'잔혹코믹극’같은 영화의 여주인공을 일컫는게 아니다. 우리나라 퓨전푸드의 선구자로 꼽히는 노희영씨(37). 의대생 시절 해부도를 빼어나게 잘 그렸다는 평을 들을 만큼 예리한 관찰력을 지닌 그는 시대의 패션을 읽는데 메스처럼 날카로운 눈을 지녔다.
2년반 전 서울 강남구 청담동 레스토랑 '궁’을 차려 국내에 퓨전푸드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노씨가 최근 같은 동네에 바 '휴’를 열었다. 한때의 직업이었다가 접었던 액세서리 디자이너로서의 일도 다시 시작한다. 그의 '안테나’에 세상 변화의 흐름이 잡혔다는 얘기다.
▼醫→依→義?▼
고교 1학년때 미국유학을 갔다. 영어가 별로 필요없는 과목을 찾다보니 머리좋은 까만 머리의 소녀는 이과학생이 돼버렸고 장래를 보장받을 수 있는 의대를 선택했다. 그러나 소아과 인턴시절, 환자라면 징그러웠다.
자신 보다는 남편을 성공시키겠다고 결심하고 결혼했다. 요리책을 펴놓고 하루 10시간 이상 맛있는 음식을 만들었다. 그러나 가사노동이란 게 한계가 있었고 자신을 뒷바라지한 부모에게 미안해 선택한 것이 파슨즈 디자인 스쿨. 한국학생이 없는 액세서리 디자인을 전공했다. 1988년, 꼭 10년만에 단추지다이너로 귀국했다. “톱디자이너 중에 내 단추를 달지 않은 이는 없었어요.”
그런데 1990년대 중반 단순한 패션의 미니멀리즘이 유행하면서 그 자신이 액세서리를 하지 않게 됐다. 옷으로 신분을 나타내는 시대는 끝났으며 먹는 것이나 사는 것 등 생활이 중심이 됐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단추디자인회사 '희노콜렉션’을 접고 그 자리에 '궁’을 냈다.
9월쯤 액세서리 스튜디오를 다시 낼 참이다. 올들어 서서히 액세서리가 눈에 띄기 시작했으므로. 대중을 위한 액세서리가 아니라 노씨의 스타일을 좋아하는 소수를 위한 작품을 만들 작정. 그의 리빙센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부틱 호텔’을 짓는 것이 꿈이다.
▼표정있는 요리, 퓨전푸드▼
퓨전푸드점을 열기 전 노씨는 '한식을 먹던 미식가들이 남의 나라 전통음식을 찾게 되고 그 다음엔 새로운 맛, 퓨전푸드를 찾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요리를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패션에 민감한 그는 예의 그 예리한 관찰력으로 많이 먹고 보고 주방장과 토론하면서 요리를 개발한다. 일년에 3분의 1일을 여행하는 노씨의 여행일지는 레스토랑 순례기다. 음식점에 가서 한번에 메뉴를 1∼4가지 선택해 맛보면서 재료와 조리법을 궁리한다.
개업하기 전 2개월간 내로라하는 서울시내 주방장들을 초대해 실습하면서 토론을 벌였다. 주방장들은 '족보’에도 없는 음식이라며 반발했지만 노씨는 자신의 아이디어와 상상력을 요리로 재현했다. 앞으로의 요리는 재료의 신선도와 저칼로리의 싸움이 되리라는 전망.
"한식을 기본으로 해 새로운 맛, 퓨전푸드를 개발해요. 한식은 한꺼번에 넣고 끓이지 소스를 따로 먹는 것이 드물어 새 맛을 내기가 어렵죠. 된장소스 냉이샐러드, 고추장소스를 바른 새우튀김, 레몬간장으로 맛들인 게요리…. 요리에도 표정을 넣으면 더 맛있게 할 수 있을 거예요.”
<김진경기자> kjk9@donga.com
▼노씨가 권하는 간편한 퓨전푸드▼
노씨는 자신의 식당 ‘궁’(02-515-0861)에서 맛볼 수 있는 퓨전푸드를 소개했다. ‘노희영식 푸드’지만 상상력과 아이디어를 동원해 더 진기한 요리로 만들어 보라고.
▽새우와 냉이샐러드〓냉이와 양파는 각각 올리브오일 식초 고춧가루에 버무려 접시 위에 깔고 새우를 삶아 식초와 설탕물에 살짝 재웠다가 그 위에 얹는다.
▽크랩크랩〓게는 껍질이 말랑말랑해지도록 식초물에 담근다. 다진 마늘과 기름으로 부추 파 양파를 볶다가 간한 뒤 게껍질에 넣어 끓인 다음 건진다. 게와 게다리를 계란 녹말을 씌워 튀긴다.
▽스파이스 폴로〓닭가슴살을 청주 간장 생강에 절였다가 계란 녹말을 씌워 두 번 튀긴다.육수 간장 설탕에 파 마늘 파란고추 빨간고추 다져넣은 소스와 식초를 끼얹고, 돋나물 겨자잎 양파를 설탕 소금 간장 식초에 무쳐 곁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