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를 느낄 만큼 잘 쓴, 훔치고 싶은 시였다.”
시인 최영미는 최근 내놓은 산문집 ‘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에서 박남준의 시를 이야기하며 그렇게 고백했다. 궁금하다. 동료 시인에게 질투를 살 정도라면.
마침 박남준 시인이 네 번째 시집을 선보였다. 문학동네가 펴낸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얼핏 보아 그의 시는 고적하기까지 한 그의 일상 위에 멈춘다. ‘눈이 오는가 누가 오는가/처마 끝 알전구 불을 밝혀두었나/심심한 날이 또 밝아오는가’(동지 밤) 라는 등의 담채색(淡彩色) 풍경에 전주 모악산 기슭 누옥(陋屋)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묻어난다.
무얼까, 문득 돌아보기조차 힘든 아픔들이 까실하니 드러나는 까닭은…. ‘길에 나서면 길은 언제나 나를 가로질러 갔고/나 내가 걸어온 길에 갇혀 길 밖에 버려지고는 했다’(떠도는 무렵), ‘더 깊은 그늘로 몸을 던져야 하는지/아픈 꿈이 절뚝거리는 몸을 끌고 꿈 밖을 떠돈다’(치명적인 상처).
그의 내상(內傷)은 풀과 꽃과 하늘과 미물들에 투사된다. 봄 쑥을 뜯다 ‘이 여린 것을 먹고 살겠다니 잔인하단 생각’(무서운 추억)에 사로잡히고, ‘산빛과도 같은 우울한 블루/이제 푸른빛은 더 이상 위안이 아니다’(저녁 무렵에 오는 첼로) 라고 나지막이 내뱉는 그의 목소리. 아픔을 다스려 자연의 전존재와 교감하는 저릿한 합일에 맞닿는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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