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의 주관주의 Vs. 객관주의▼
객관주의는 연주자가 작곡자가 쓴 악보 그대로를 전달하는데 충실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연주자의 주관은 배제돼야 한다는 입장. 주관주의는 ‘악보는 대략의 구도를 전달하는 성긴 틀일 뿐이며, 연주자가 개입해 작품의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탈리아의 토스카니니와 독일의 푸르트벵글러가 20세기 중반 각각 양쪽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1957년 토스카니니 사망후 지휘계는 주관주의가 득세하는 듯이 보였다. 오스트리아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 미국의 레너드 번스타인은 자기나름의 템포 강약설정 등 독특한 설계로 개성에 넘친 연주를 선보였다. 그러나 90년대에 상황은 일변했다. 카라얀과 번스타인이라는 거장이 사망한 공백 위에서 ‘작곡가 당시의 악기와 연주법을 사용한다’는 원전연주가 인기를 누렸다.원전연주는 작곡가의 의도를 고증해 재현하는데 목표를 두므로 ‘초(超) 객관주의적’ 경향을 나타냈다. 최근의 베토벤 교향곡 전집으로 주목받아온 음반도 존 엘리엇 가디너의 ‘낭만과 혁명 오케스트라’ 연주, 교정악보를 사용한 데이빗 진만의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 연주 등 원전 경향의 연주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와중에 모처럼 비(非) 원전연주 지휘자 중 역량과 개성을 인정받는 바렌보임이 베토벤 교향곡 전집을 선보이게 된 것.
▼연주의 특징은▼
6장으로 발매되는 앨범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두터우며 박력있는 음향. 구동독 명문 악단 중 하나인 베를린 슈타츠카펠레는 치밀한 현악부와 강건하면서 절도있는 금관 등 남성적 색깔이 두드러지는 음향을 펼쳐나간다. 바렌보임은 대개의 부분에서 템포를 다소 느릿하게 잡아 악단의 꿈틀거리는 역동감을 두드러지게 한다. 그의 ‘주관주의’는 특정 악구의 속도를 눈에 띄게 늦추거나 강약을 두드러지게 하는 번스타인식 자의성(恣意性)이 아니라, 음향의 밀도나 악기군 사이의 색상대비를 치밀하게 설계한 뒤 실천해나가는 카라얀의 방법론에 가깝다.
▼왜 바렌보임인가▼
현역 지휘자 중 바렌보임은 작품의 골격과 근육을 가장 역동감있게 보여주는 지휘자로 꼽힌다. 금관과 저음현의 두터운 화음, 무겁게 끓어오르는 중량감있는 음향을 특징으로 하는 그의 지휘는 CD시대 유행을 이룬 매끈하고 투명한 사운드의 관현악 연주와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남성적인 면과 도취적 성격이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지난시대 푸르트벵글러와도 일맥상통한다.
그가 베토벤 전집을 내놓게 된 데는 올해가 그의 데뷔 50주년이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그는 1950년 여덟살의 나이로 고향인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피아노 데뷔 연주를 가졌다. 그의 소속사인 텔덱은 그의 음악생활 반세기를 기념해 그의 피아노연주 관현악 지휘를 망라한 15종의 기념 음반도 발매한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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