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신간]봉건사회 중국의 현대화방향 모색

  • 입력 2000년 4월 21일 20시 09분


▼'전원시와 광시곡'/친후이·쑤원 지음/유용태 옮김/이산▼

5·4운동기에 후스(胡適)과 리다자오(李大釗)는 이른바 ‘문제(問題)와 주의(主義)’ 논쟁을 전개했다.

사실상 사회주의와 자유주의의 대결이었던 이 논쟁은 사회주의의 승리로 마감됐다. 중국 칭화(淸華)대 교수인 친후이(秦暉)와 중국공산당 러시아연구센터 연구원인 그의 부인 쑤원(蘇文)이 문화대혁명 시기 그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 책(원제목 田園詩與狂想曲)은 개혁개방이라는 ‘또 하나의 혁명기’에 전개되고 있는 ‘문제와 주의’ 논쟁의 재연으로 볼 수 있다.

이번에는 자유주의와 신사회주의(신좌파)간의 논쟁으로 이 시대의 중국이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학문적 성찰이자 정치노선 싸움이며 근대성 규명 논쟁이다.

‘농민학에서 본 중국의 역사와 현실사회 비판’이란 부제의 이 책이 관심을 끄는 것은 무엇보다도 동서양과 고금을 넘나들며 구사되고 있는 폭넓은 이론과 방대한 사료의 힘이다.

주체적으로 식민지를 극복한 중국사회의 역사는 분명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지만 한동안 쏟아져 나왔던 팜플렛식 지적 생산물은 그 학문적 엄밀성면에서 신뢰를 못 받아 왔다. 그러나 기존의 자료들과 달리 이 책은 중국의 지적세계를 편견없이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이 책의 핵심은 봉건사회와 봉건성에 대한 정의에 있다.

저자는 봉건사회를 토지소유나 군사적 충성관계가 아닌 인신의존 관계에 바탕을 둔 종법(宗法·가부장적)공동체라고 정의한다. 이 경우 수탈은 소유권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권세에 의해 이뤄진다.

따라서 권세자는 축적이 필요없고 농민은 축적을 할 수가 없다. 그 결과 상품경제와 사유제는 발전할 수 없다. 또한 권세자가 속박의 반대급부로 농민을 보호를 해 줌으로써 농민은 독립적이고 자유개성을 가진 존재로 성장하지 못하며, 종법공동체는 장기지속하게 된다.

저자는 종법공동체의 봉건성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토지소유가 철폐된 후에도 도처에 존재하는 관계(關係)망, 문화대혁명시기에 나타난 비이성적 군중히스테리나 위인숭배, 인민공사 건설에서 나타나는 집단주의에 대한 맹목적 충성 등이 그 중요한 표상이다. 이 점에서 이 책은 단순한 봉건사회 분석을 넘어선 현대화의 방향 모색이자 근대성 성찰이다.

이 책은 중국자본주의의 문제를 살피는 데도 유용하다. 저자는 자본주의 미발달의 원인을 농민반란이라고 보는 진관다오(金觀濤)나 과밀화 현상에 의한 노동생산성 저하에 두는 필립 황(Philip C Huang)과 달리, 그 원인이 자연경제를 바탕으로 하는 종법공동체에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전통사회에 대한 유교공동체론자의 목가적 환상 이면의 속박과 통치, 또는 동아시아 봉건사회의 특수성을 밝히고 있는 점 등도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장점만큼이나 문제가 되는 부분도 많다. 우선 종법공동체의 강고한 순환적 구조를 강조해 장기지속적 현상으로 설명함으로써 농민을 발전 없는 정체적 존재로 본다.

물론 저자는 농민 스스로 상품경제와 자유인 연합체를 만들어 종법공동체를 해체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그러나 종법적 농민이 어떻게 주체적이 된단 말인가?

저자는 교육과 상품경제의 유입으로 그것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중국사 전체를 타율성으로 해석할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다. 이 경우 상품경제란 외부로부터 올 수밖에 없게 된다. 특히 이것이 계몽, 과학, 시민사회, 자유, 상품경제 등의 서구적 가치에 대한 저자의 선호와 연결되면 결국 중국판 근대화론으로 변할 가능성마저 있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전원시’적인 농업문명에서 일탈해서 자유인이 연합해 ‘광시곡’을 부르자고 주장하며 개혁개방시대를 예찬하는 자유주의자로 볼 수 있다. 그러나 1949년 이후 중국에서 자유주의자란 한국의 경우와 달리 대체로 진보주의자들이다.

결국 이미 달성된 ‘사회주의 초급단계론’ 아래의 자유주의와 신사회주의 논쟁은 저자의 주장과 달리 ‘주의와 주의’라는 근대형성 논쟁이라기보다는 산업화 방법을 둘러 싼 ‘문제와 문제’간의 근대완성 방법론 논쟁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왜냐하면 저자의 주장들은 사회주의를 인정하는 바탕위에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희교 광운대 중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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