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임영선은 온통 불에 타고 그을린 흔적으로서의 작업실을 전시하고 있다. 작품보다도 그것을 창조하는 주체의 심정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겠다.
읊지 않는 시인이란 있을 수 없다. 그리지 않는 화가도 있을 수 없다. 제 아무리 자신이 천재라고 마음먹어도 소용없다. 한번 그려봐야 한계를 알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한계를 극복하려고 다시 붓을 든다. 이것의 끊임없는 되풀이가 화가의 일생이다. 표현하려는 주관적 심정과 그것을 표현한 작품 사이에는 늘 마찰(摩擦)의 변수가 따른다. 이 은밀한 비밀이 충동하여 이제까지 열심히 그리던 작품을 불문곡직으로 부수기도 한다. 불을 지르고 작품과 함께 타버리고 싶은 충동은, 그 작가의 진실성과 비례한다. 예술가를 ‘절대(絶對)의 노예’로 비유하는 까닭이다. 이러한 자기부정의 되풀이가 작가를 성숙시킨다.
이번 임영선의 발표는 한 예술가의 라이프 퍼포먼스를 표현한 예라 하겠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술가의 심정에 불을 지른 작품이라고 하겠다. 흔적은 남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준상(서울시립미술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