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이 창작과비평사에서 두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1999년 1월부터 13개월 동안 동아일보에 작품을 연재하며 독자들과 함께 밀레니엄의 전환을 맞았던 작가. 그는 책을 손에 잡고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행복하다. 연재 중에도 새벽에 원고를 전송하고 나면 ‘마음껏 쓸 수 있다’는 기쁨에 들떠 마냥 걷곤 했다. 데뷔 시절의 마음으로 돌아가 ‘황석영 문학 2기’를 꽃피우겠다.”
장편 ‘무기의 그늘’ 이후 만 12년. 방북, 독일 미국에서의 망명생활, 5년여의 감방생활이 작가의 삶을 통과해 갔다. 손바닥만한 햇빛이 들어오는 냉방에서 작가는 ‘오래된 정원’의 줄거리를 구상했다.
오래된 정원…. 아득한 산맥 어딘가, 감추어진 바위틈에 들어서면 아름다운 꽃과 열매가 반겨 맞이하는 곳. 인류가 긴 역사를 통해 찾아 헤매 온 이상향을 상징한다. 유토피아를 꿈꾼 사람들의 오랜 바람과 노력은 결국 환멸로 끝났는가, 마모되고 색바랬을 망정 유효한 것인가.
“서구가 1960년대에 변혁운동을 통과해 나갔지만 우리는 80년대에 이상사회를 향한 열병을 겪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바쳤고, 변화되거나 거듭나면서 세상 속에 녹아들어갔다. 갈등이 불꽃처럼 응축돼 빛났던 이 시대가 결국엔 우리 역사의 진보에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으로 믿는다.”
작가는 주인공인 사상범 장기수 오현우 속에 젊은 날의 자신이 녹아있다고 말한다. 여름날 짧은 사랑의 기억만을 가진 채 그의 딸 은결을 낳고, 또다른 자리에서 뜨거운 삶을 영위해가는 여주인공 한윤희 역시 작가의 이상적 여성상이 모자이크된 존재다.
작가의 그런 애착 때문일까. 죽은 윤희가 남긴 노트를 통해 비로소 만날 수 있었던 두 사람의 운명은 시종 읽는 이의 콧날을 시큰하게 만든다. 연재 후반 기자에게는 ‘현우와 딸을 만나게 할 수 없느냐’는 전화가 이어졌다. 작가도 그런 여론을 접한 듯, 책으로 작품을 갈무리하며 약간의 손질을 가했다.
“이전 작품보다 서정성이 강화됐다고? 그럴 것이다. 1970,80년대는 서정을 감상으로 치부할 수 밖에 없던 시대였다. 그런 시대적 제약이 사라졌고, 북한을 접하고 징역도 살고 난 뒤에는 이념적 편향으로부터도 자유로와졌다고 생각한다. 문학은 예술이다. 서정을 도외시하고는 숨쉴 수 없다.”
그는 감옥에서 구상한 두 번째 소설 ‘손님’을 집필중. 좌우 이념갈등속에 빚어진 학살사건을 소재로 했다.
‘꼭두각시 놀음’등 전통연희 기법을 도입한 실험적 형식의 작품이 될 것이라고 작가는 말했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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