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과 전세계를 웃음바다로 만든 백악관의 ‘클린턴 개그 비디오’ 첫 장면. 클린턴이 기자회견장에서 정책을 쏟아내지만, 기자석에는 최장수 백악관출입기자인 헬렌 토머스 뿐. 졸고 있던 토머스가 벌떡 일어나 묻는다. “아니, 아직도 퇴임 안하셨나요?”
책의 개정판이 발간된다면, 비디오의 일화도 한 페이지를 차지하지 않을까….
헬렌 토머스. 61년부터 UPI통신 백악관 담당기자로 일해온 여장부. 케네디에서 클린턴까지 8명의 대통령과 측근들을 밀착 취재해온 팔순의 노기자다. 책은 열정과 소신으로 똘똘 뭉친 한 언론인을 통해 세계 최고의 권력기관과 협조하고 갈등하며 그들의 비전과 선의, 아집과 실수를 타전해온 ‘세기의 기록’을 그려낸다.
역사적 순간과 권력자의 인간적 면모를 교차시키는 수법은 저널리스트로서 토머스의 노련미를 느끼게 하는 장기. 부시는 92년 대통령 선거일에 낚싯줄과 CD를 사고 있었다. 일찌감치 운명을 직감한 행동이었다. 94년 12월 백악관에 기관총 난사 사건이 일어나던 시간, 부통령인 앨 고어는 우스꽝스러운 핼로윈 분장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그 모습으로 대통령 취임선서를 해야 하는 줄 알았다.”
때로 백악관 주인들과 기자 사이에는 불꽃이 튄다. 바버라 부시는 힐러리 클린턴에게 기자를 가리켜 ‘흑사병을 보듯이 피하라’고 했다.
1974년 토머스가 UPI의 백악관 담당 총책임자로 임명되자 닉슨은 기자회견을 축하의 인사로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감사인사 대신 워터게이트 사건 관련 위증에 대한 칼날같은 추궁으로 첫 질문을 던졌다. 언제부터인가 백악관의 프레스 컨퍼런스와 브리핑은 그의 첫 질문으로 시작, “땡큐”라는 그의 종료선언으로 끝나게 돼 있었기 때문이다.
백악관 대변인실 평가에 따르면 토마스는 ‘가장 비협조적인 기자’로 분류된다. 하지만 그가 ‘왕따’를 당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역대 대통령들은 그의 협조를 간청했고, 생일 때 마다 환심을 사기위한 이벤트를 마다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바뀌면 출입기자도 바뀌는 것이 보통인 우리 청와대 출입기자의 ‘현실’을 생각하면 마냥 부럽기만 하다. 462쪽. 1만5000원.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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