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에서 이어령 교수의 ‘축소지향의 일본인’까지.
‘일본인론’은 세계 어느 민족을 분석한 민족론보다 유독 번성한다. ‘일본인은 어떤 점에서, 왜 다른 민족과 다른가’에 관심을 보인다는 점에서 80년대 후반에 쓰여진 이 책도 그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다른 일본인론이 흔히 개개의 현상으로부터 보편적인 일본인의 심층의식과 그 역사적 배경을 끌어내려 하는 데 비해, 이 책의 시각은 한사코 ‘미시적’인 데 머무른다. 저자의 돋보기가 접근하는 재료는 밥상, 장독, 욕탕, 다다미방 등 생활 주변의 작은 것들이다. 굳이 분류하자면 ‘일본인에 의한 일본 민속학 산책’ 쯤이 될 듯하다.
왜 일본인은 숟가락을 쓰는 대신 식기를 입에 가져다 대고 젓가락으로 밥을 쓸어담을까. 저자는 일본인의 주식이 푸슬한 잡곡밥이나 끓인 잡탕죽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왜 일본인은 부처와 신령을 함께 섬길까. 가마쿠라 시대에 조사(祖師·종파의 시조)를 섬기는 정토종이나 정토진종이 발흥하면서 부처의 가르침과 가부장에 대한 공경이 혼합된 때문이라는 진단.
일본인의 혼욕(混浴) 풍습은 도덕적으로 불결한 것일까. 저자는 오히려 혼욕의 습관이 공동체의 ‘풍기 단속’을 내외면적으로 강화한다고 말한다.
서양인들의 일본인론이 흔히 범하는, ‘동양적인 것과 일본적인 것의 혼동’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각 장마다 한국 중국과의 비교가 빠지지 않는 점은 흥미롭고 즐겁기까지 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기생이 한쪽 무릎을 세우고 손님을 접대한다. 일본 유곽에서 일하는 여인의 예절과도 상통할 것이다’라는 등의 대목에서는 피상적인 수준에서 머무른 저자의 관찰력과 부주의를 탓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여성들의 절하는 모습을 보고 턱없는 상상을 한 것은 아닐까. 김석희 옮김. 8000원.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