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은 디지털 시대의 산물이다. 디지털 시대의 특징은 구심점이나 구체적 실체가 없이 모든 것이 수평적인 사이버 공간에서 전자부호로 이뤄진다는 데 있다. 사실 디지털 시대가 아니고서야 어찌 자본가와 노동자의 개념이 와해된 벤처기업이 생겨나 막강한 기존 재벌들을 감히 위협할 수 있겠는가? 디지털은 이렇게 자유와 평등을 가능하게도 해주지만 동시에 거품과 단절, 그리고 허구성과 찰나성의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디지털에 대해 문학은 일단 유보적 태도를 갖는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문학이나 인문학은 가장 진보적이면서도 가장 보수적이다. 그래서 문학자들이나 작가들은 한편으로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환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의 독주와 과속에 부단히 제동을 건다. 첨단 테크놀로지의 무한한 가능성을 추구하는 과학과는 달리 문학이 추구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디지털과 아날로그, 그리고 사이버 공간과 현실세계의 조화와 공존이기 때문이다.
문학자들이나 작가들은 전자매체인 디지털이 문자매체인 문학의 존립을 위협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디지털 시대의 변화는 문학에서도 이미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기존 문단의 등단 절차를 무시한 채 컴퓨터 통신을 통해 등단하는 신세대 작가들의 출현이다. 전자가 작가나 비평가 같은 소수 전문가들의 임의적 선정이나 추천에 의존한다면 후자는 아마추어인 다수 독자들의 보편적 지지에 의존한다.
비평가들은 물론 독자들의 판단력과 수준을 의심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태도는 예술가들에게 우월성과 특권을 부여했던 모더니즘 시대의 산물일 뿐 저자와 독자가 동등해진 이 시대에는 별 설득력이 없다. 독자들로부터 외면받는, 그래서 작가들끼리만 돌려 읽는 문학은 이제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지털 시대에는 전문가와 아마추어 사이의 경계가 와해된다. 문학에서는 그것이 인터넷에서 이루어지는 아마추어 작가들의 연작소설 또는 작가와 독자의 공동창작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하이퍼 픽션’이라고 불리는 후자의 경우에는, 독자가 작가의 창작 과정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문학 생산자와 소비자의 구분을 해체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문학연구나 문학교육 현장에서도 문학과 타 매체와의 접목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런 것들을 가능케 하는 것은 물론 디지털의 멀티미디어적/인터랙티브적 속성이다. 디지털의 그런 특성은 그 동안 대립해오던 모든 것들의 경계를 해체하고 뒤섞고 재구성하며, 문학과 영화처럼 같은 예술 장르끼리의 혼합뿐 아니라 문학과 과학, 또는 예술과 산업 사이의 대화까지도 가능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그런 변화는 순수를 부르짖으며 기존 문단의 중심에 안주해 기득권을 향유해 온 제도권 문학자들이나 작가들을 불안하게 한다. 하지만 문학의 세속화와 변화는 필연적이다. 종이 책과 플라스틱 책, 그리고 문자매체와 전자매체의 공존은 엄연한 현실이 됐으며 그런 현상이 초래한 인식의 변화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됐기 때문이다. 문학자들이나 작가들은 원래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를, 그리고 비순수의 시대에 순수를 꿈꾸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지금은 누구도 디지털 시대를 벗어나 살 수 없다. 사실은 문학도 디지털처럼 실체가 없고 허구적이며 창의력과 상상력에 의존하고 가상현실에서 작용한다. 또 문(예술)과 학(학문), 그리고 저자와 독자를 통합하고 연결한다는 점에서 문학 역시 디지털처럼 복합적이고 쌍방향적인 매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문학과 디지털은 상극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지도 모른다. 문학은 이제 스스로를 열어놓아야 한다.
그러면서도 문학자들과 작가들은 디지털 시대의 문제점들-예컨대 문화제국주의, 유전공학의 오용, 첨단 테크놀로지에 대한 과신, 경제/경영 지상주의, 정보의 독점과 통신의 감시, 예술의 비인간화 등에 대한 경계와 경고를 게을리해서는 안될 것이다.
김성곤(서울대 영문과 교수)
※다음회는 ‘언론정보학’으로 필자는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양승목교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