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과 과외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초등학교 6학년때부터 최군은 오로지 과외교사와 학원강사가 나눠주는 ‘프린트물’로만 수업을 받았다. 영어 수학 암기과목은 물론이고 논술 과외를 받을 때도 항상 책의 일부분만을 복사한 교재만 봐왔다.
“시험 때도 과외선생님이 오기 전에는 도무지 교과서나 참고서에 손이 안가요.”
과외교사가 영양만점의 소화잘되는 이유식을 ‘떠먹여주는 식’이 아닌 공부는 이미 그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재수생 아들을 둔 학부모 고모씨(48·서울 서초구 잠원동)는 극심한 ‘금단현상’을 견디다 못해 결국 다시 과외교사를 초빙하기로 했다.
“아들을 못믿겠다는게 아니라, 정말 안심이 안되네요. 이번이 마지막이니까 딱 한번만 더 시키려구요.”
일단 과외공부의 길로 들어선 학생은 대학 입학에 성공할 때까지 그 길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과외를 하지않으면 불안하고 ‘나만 뒤처지는게 아닌가’하는 상대적 피해의식을 갖는다. 결국 학생들은 정서장애, 학부모들은 강박장애에 시달리기 십상이다. 일종의 정신질환이라는데 전문가들은 의견을 같이 한다.
한국뇌학회 회장 서유헌교수(서울대의대 약리학)는 “뇌의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의 흐름을 자극해 계속해서 무언가를 탐닉하고 그것이 없으면 불안과 초조의 과정이 반복된다는 점에서 심한 과외의존증은 일정부분 약물중독이나 인터넷게임중독 등과 궤를 같이 한다”고 말했다.
또 △하고싶어 안달하고 △하지 않으면 불안 우울 등 금단증세가 나타나며 △내성(耐性)이 생기는 것으로 압축되는 임상병리학적인 의미의 ‘중독’과 상당히 흡사하게 진행된다.
성균관대의대 강북삼성병원 신영철교수(정신과)는 “과외중독은 일종의 비약물성 중독으로 볼 수 있다”며 “학부모와 학생들 사이에 ‘남들도 다하는데 우리만 안하면 안돼’라는 식의 강박관념장애와 ‘과외를 했으니 공부를 많이 했다’는 식의 보상심리를 발동시키는 과정이 복합적으로 반복된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홍강의교수(소아정신과)는 의대생들을 보고 가끔 깜짝깜짝 놀랄때가 있다고 말한다.
“생각이 구조적이지 않고 너무 구체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전체적인 파편적 흐름을 인식하지 못하는거죠. 스스로 생각하고 공부하기 보다 과외교사가 뽑아준 요점정리만을 외워온 주입식 과외교육의 폐단으로 보입니다.”
이는 뇌 발달에 장애요소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전두엽 두정엽 등 상부뇌에 해당하는 연상영역의 발달은 도외시한 채 하부뇌에 속하는 변연계의 암기능력만을 숙련시킴으로써 다면적인 뇌발달에서 ‘한계’와 ‘바닥’을 금방 드러내기 마련이라는 것.
결국 ‘공부하고자 하는 열망을 어떻게 막겠느냐’는 취지에 따라 위헌이 아닌 것으로 판정된 과외가 정작 스스로 공부하는 능력과 정신적 성장을 가로막는데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학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더라도 이같은 방식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사회는 그렇지않은 세상과는 다른 모습이 될 수 밖에 없다.
“도박 경마 등의 집착성에서 알 수 있듯이 과외에의 집착성이 조급한 성질을 계속 개발시킨다.” (서울대 정신과 류인균교수)
“과외를 지속적으로 받는 사람들은 자기 아이디어를 분석하고 기술하는 능력이 부족해진다. 남한테 무언가 도움을 받지 못하면 안되는 의존성 타성이 강하게 형성되는 것이다.”( 서울대 정신과 권준수교수)
홍강의교수는 “연역적인 추론방식이 뒤떨어지게 된다는 것은 창의성이 무엇보다 중요해지는 앞으로의 시대방향에 역행하는 교육방식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조인직기자>cij1999@donga.com
▼꼭 해야만 하나▼
최근 발간된 뉴스위크 특별판 ‘유치원에서 중학교까지 부모가 알아야할 모든 것’에서는 지능이 비슷하고 동등한 학교교육을 받은 두 학생이 왜 학업성적은 다른지를 소개했다.
학습능력 증진 프로그램에 관한 책 ‘메가스킬스’를 펴낸 도로시 리치에 따르면 이 차이는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동기유발에 있었다. ‘나는 하고 싶다’는 내면의 소리에 불꽃을 댕기는 것은 부모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미국 워싱턴대의 존 고트먼과 동료들은 부모가 자녀의 감정을 중시하고 자각력과 자제력을 길러주면 자녀는 더 좋은 성적을 내며 그 효과가 수년간 지속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신동희 연구원은 “학부모들이 보다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자녀들의 학습의욕을 효과적으로 자극하는데 지혜를 모으는게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결국 학교와 사회가 해결하지 못하는 과외라는 이름의 ‘뜨거운 감자’는 다시 부모에게 돌아오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