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과감한 도식일까.
‘테너 삼국지’의 역사는 세 사람의 개성이 너무도 뚜렷했기에 가능했다.
파바로티는 밝고 또렷한 목소리로 낙천적인 분위기를 주위에 흩뿌렸다. 150Kg을 넘나드는 거구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팔을 벌려 인사하는 이 ‘순진한 곰’을 보며 관객들은 행복과 밝음의 이미지에 흠뻑 취하곤 했다.
반면 도밍고는 많은 것을 알고 있거나 큰 재산을 소유한, ‘가진 자’의 이미지를 줄곧 풍겨왔다. 바리톤으로 출발한 그의 음성은 짙고 기름지다. 힘좋은 ‘젊은 장군’은 그의 단골 배역.
창백하고 깡마른 카레라스는 온 몸을 쥐어짜 노래한다는 느낌을 준다. 가진 것 없지만 열정이 넘치는 남자, ‘시인’이 그를 감싸는 이미지다.
1990년대 등장한 ‘신 빅 스리 테너’는 어떨까. ‘함량’이 기존의 빅 스리에 미치느냐는 논외로 하더라도, 세 사람 역시 서로 결핍된 부분을 훌륭히 보완해 준다. 서두의 어법으로 이야기하자면, 로베르토 알라냐는 ‘멋쟁이 연인’, 호세 쿠라는 ‘위태로운 연인’, 안드레아 보첼리는 ‘슬픈 연인’이다.
이탈리아인 알라냐로 말하자면 다른 두 사람과 함께 거명되는 것이 유감스러울 터이다. 95년 이래 수많은 음반을 베스트셀러에 올리며 일찌감치 스타로 자리매김했으니까. 그러나 침체기에 접어든 클래식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는 역할분담이 잘 된 테너 ‘신 삼국지’가 필요한 것이다.
알라냐의 노래는 날렵하며 깔끔하게 마무리돼 있다. 두 차례나 음반을 낸 푸치니 ‘라 보엠’, 1막 마지막 ‘사랑의 이중창’에서 그는 잘라맞춘 듯 밀고 당기는 절묘한 기복의 설계로 꿈결 같은 분위기를 띄워낸다.
그러나 그의 ‘적’들은 “잘 부르지만 마음을 치지 않는다”고 그의 노래를 줄곧 공격해 왔다. 듣는 사람의 귀를 단단하게 포박해 끌어당기는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이유있는’ 불평이다.
아르헨티나 출신 호세 쿠라에 대해서는 해외 언론의 절묘한 평이 있다. ‘60년대 테너 프랑코 코렐리의 뻣뻣함과 마리오 델 모나코의 무례함을 갖추고 있다.’ 확실히 그의 노래에서 연상되는 인간형은 악한 또는 뻔뻔한 인간이다. 포르테의 고음은 귀청을 따갑게 하지만, 피아니시모에서는 때로 한없이 늘어져 관현악 반주부의 ‘재촉’을 받고 만다. 그렇지만 그의 노래는 가슴을 후련하게 한다. 70년대 이후 오래 ‘공백’으로 존재했던 드라마티코 (劇的)테너의 대어라는 점에서 그의 존재는 중요하다.
보첼리는? 오랫동안 그는 ‘테너’로 여겨지지도 않았다. 가요 부문에서 노래 경력을 시작한 때문이 아니라, 목소리가 작고 앞을 못보는 탓에 ‘오페라 가수’로 끼워주기에 무리가 있었기 때문. 그러나 최근 마스네 오페라 ‘베르테르’의 타이틀 롤로 무대에 오르면서 그는 오페라 스타의 반열에 드는 문을 열어젖혔다.
그의 노래는 곧잘 안타까운 느낌과 동정심마저 자아낸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장애인이니까, 안돼서….’라고만 그 이유를 해석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그의 노래 자체가 ‘그리움, 슬픔’을 자아내는 독특한 기질을 갖고 있다. 고음역에서 울컥 쏟아내는 그의 포르테는 ‘한(恨)이 걸러져 승화된’ 듯한 독특한 표정을 드러낸다. 힘을 뺀 채 무방비상태로 뻗어가는 피아니시모는 손을 내밀어주고 싶은, 등을 토닥여주고 싶은 충동을 팬들에게 안기는 것이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