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시집들에서도 흔히 그랬듯이, 그의 시에서 ‘몸’은 세계와 등가(等價) 혹은 등신대를 이룬다. ‘지구 한 방울’과 ‘내 뺨을 타고 어딘가로 또 흘러’(모든 것을 기억하는…)가는 눈물방울이 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몸속의 천개의 강도 출렁’(월인천강지곡) 거린다.
몸이 세상이기에, 생명을 잉태하는 모체는 곧 삼라만상을 잉태한다. 여성은 어머니-딸의 관계를 통해 연속되는 생명의 시계열(時系列)을 이룬다. ‘수면 아래에는 아직 부화되지 않은 별들(…)또 엄마인 내가 차가운 별들을 가득 품고 있어요.’(엄마는 깃털 샘인가 봐요)
달 눈보라 젖 등의 백색 이미지로 나타나는 모성은 그러나 곧잘 시련에 처한다.
‘나는 나는 조그만 아가를 기르고/있었어요 그런데 그만 그 아가를 먹이지 못했어요’ (나는 비에 젖는 이불을…)
뉴스에서도 ‘여자들이 맡은 배역은 불에 타 죽은 아이를 껴안고/몸부림치며 우는 역할뿐’(물 속에 잠긴 TV) 이다.
무엇이 ‘생명의 어머니’안에 아픔을 잉태시키는 것일까. ‘모든 삶의 밑바닥에는 끔찍하게 무겁고, 끔찍하게/힘들고, 끔찍하게 뜨거운 것 있잖아?/그 뭉쳐진 것이 터지는 날/세상에! 눈보라처럼 흐느끼는 바이러스 같은 것!’ 그것이 무엇일까. 시인은 시제(詩題)에서 그것을 ‘자욱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79년 등단한 시인은 97년 김수영문학상 첫 여성 수상자로 선정됐으며 올해 제15회 소월시문학상과 제1회 현대시작품상을 받았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