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세대]TK(탱큐) 486(사랑해) 모르면 NG(쉰)세대

  • 입력 2000년 5월 15일 19시 47분


“오빠, TK!”

이때 TK를 ‘대구 경북’으로 안다면 당신은 NG세대(No Good·쉰세대). 젊은층에게 TK는 Thank You를 축약한 일종의 ‘기호’일 뿐이다.

영상과 이미지로 사고하는 디지털 세대. 그들은 글자도 읽기보다 ‘보기’를 즐긴다. 숫자와 기호를 언어처럼 사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N세대를 주고객으로 삼는 업체에서도 문자를 변형한 ‘상징언어’를 다투어 도입하고 있다.

▽휴대전화가 언어를 바꾼다〓 ‘!25〓i〓U’ ‘124 1365 486486’….

휴대전화에 뜨는 문자. 수학공식도 아니고 난수표도 아니다. ‘!25〓i〓U’는 ‘느낌이 오는 아이는 너뿐’이란 뜻. ‘124 1365 486486’은 ‘1일 24시간 1년 365일 사랑해 사랑해’란 뜻. ‘486’은 ‘사랑해’란 뜻으로 각각의 글자 획수도 공교롭게 ‘4+8+6’이다.‘1365527124012486’도 등장했는데 ‘1년 365일 52주 일주일을 하루같이 24시간 영원히 사랑해’란 의미.

삐삐세대인 X세대들이 즐겨쓰던 ‘1004’(천사) ‘0404’(영원히 사랑해) 따위의 기초적인 수식보다 한결 복합 난해해진 것이 특징이다.

한 휴대전화 광고문구처럼 N세대는 ‘지문이 날라갈 만큼’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그래도 웬만한 ‘타짜(잡기에 능한 사람)’가 아니고서는 전화기 버튼을 몇 분씩 잡고 두들겨야만 글자가 새겨진다. ‘숫자 은어’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도 이 때문이라는 의견.

하루가 다르게 파생되는 영문 약어식 은어들도 역시 휴대전화 한글 자판새기기의 어려움에서 비롯됐다. “네가 그럴 줄은 몰랐어. SM이야”에서 SM은 곧 ‘실망’을 가리킨다. 마찬가지로 BS는 ‘배신’, TK는 ‘땡큐’, BT는 ‘변태’… 식이다. N세대의 대화에 종종 등장하는 어휘들이 영문기호로 탈바꿈한다. 많이 기대한 만큼 실망하고, 그런 상대를 배신자 또는 변태라 비난하고.

▽N세대를 하나로 모으자〓디지털세대를 겨냥하는 업체에서는 인터넷 덕분에 인지도가 솟아오른 ‘골뱅이’(@)의 덕을 보려는 듯, 브랜드 이름에다 밑이 조금 터진 이 빠진 동그라미로 테두리하는 것이 인기.

지난해 유행의 불을 땡겼던 것이 ‘% 016’. 휴대폰 ‘0 터치 017’, 컴퓨터 전자수첩 ‘%et 워킹’, 인터넷 쇼핑몰 ‘바이 %조이’, 스포츠가방 ‘르까프 % 색’ 등등. LG정유는 휘발유 ‘시그마 6’의 6을 ⑥으로 표기, 둥근 테 두르기를 숫자영역으로까지 넓혔다.

나드리 화장품의 새 브랜드는 더 희한하다. ‘m2:ll’. 이 화장품 관계자는 “메일을 멜이라고 읽고 ○이나 :같은 기호를 즐겨쓰는 신세대들을 타겟으로 삼아 제품명을 붙였다”고 말한다. 특별한 의미가 있다기 보다 그런 ‘이미지를 읽어주길’ 바라는 의도라는 설명.

▽a는 없다. @만 있다〓휴대폰 대리점에는 ‘여름맞이 특별 s@le’ 이라는 플래카드가 벌써부터 걸려 있다. 삼성전자 오디오 ‘@zit’, 섹션게임전문지 ‘PC G@M’, 잡지 ‘게임@무크’, 인터넷방송국 ‘@rtvill’등 a대신 @를 쓰는 것이 나날이 느는 추세. 대학가 인터넷신문 ‘싸@ㅣ버 저널’은 아예 한글의 ㅇ마저 @로 갈아치웠다.

고려대 신문방송학과의 김광수 교수는 “○, @가 처음에는 단순기호의 역할을 하다 점차 실생활의 언어체계에서 의미있는 문자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디지털 환경이 아날로그 언어의 비주얼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

▽한자가 돌아왔다〓얼마전 막을 내린 가수 김현철의 전국 순회공연 이름은 ‘魚Two菊展’였다. 거꾸로 보면 ‘전국투어’. 이를 음차한 것.

‘妙’(라네즈), ‘明明白白’(마리끌레르), ‘知彼知己’(청바지), ‘米XOZU’(두산), ‘地域不問’(배움닷컴)…. 이들 광고문구에서 오랜역사의 표의문자인 한자가 깊은 의미를 담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글과 함께, 혹은 단독으로 쓰여 시각적으로 액센트 효과를 내는 차이니스‘캐릭터’일뿐. 컴퓨터의 ‘한자’키를 치면 톡 튀어나오는 한자, 디지털세대는 잘 읽고 쓰지는 못해도 홍콩영화를 감상하듯 친숙해한다.

이화여대 불문과 송기정 교수(기호학연구소장)는 “한자가 N세대들에게 뜻글자라는 본연의 의미보다 시각적 돌출효과를 우선한 강조의 수단으로 자리잡게 됐다”고 말했다.

<조인직기자>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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