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고 영롱한 색감을 자아내 바탕색인 백자의 투명함을 더욱 은은하게 드러내는 코발트안료는 그렇게 멀리서 가져와야 했던 만큼 비쌀 수밖에 없었으므로 아껴 쓰지 않으면 안 됐다. 아무 데나 사용할 수 없었고 아무나 만질 수도 없었다. 용도를 제한하고 그림도 숙달된 화공에게만 맡겼던 것이다. 화공도 최대한 안료를 아껴야 했기에 면 위주가 아니라 선 위주로 그려야 했다. 그러나 이것은 여백의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우리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드높은 예술적 성과까지 이루게 했다. 예술적 가치가 높고 그 수 또한 흔치 않으니 어찌 청화백자의 값이 높지 않을 도리가 있겠는가.
만약 이 회회청으로 건물 외벽을 온통 장식한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 물론 돈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조건하에서 말이다. 그런데 바로 그런 곳이 이 세상에 있다. 한마디로 그것은 너무나 아름다웠고 또 신비스러웠다. 우리는 흔히 이 회회청을 아라비아 산 청색쯤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내가 보기엔 페르시아, 즉 지금의 이란이 원산지인 것 같다. 나는 이란의 중세도시 이스파한(Isfahan)를 여행하다 그 비싼 ‘코발트 블루’로 외벽을 장식해 놓은 거대한 ‘이맘 모스크’를 보고 ‘이곳이야말로 회회청의 고향이구나’ 했다.
이란 땅 한가운데에 있는 이스파한은 한참 잘 나가던 16∼17세기 ‘세계의 절반’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번성했던 도시다. 그때 이스파한은 이슬람, 그 중에서도 시아파를 국교로 삼은 사파비왕조의 수도였다. 사파비는 당시 이 지역 최고의 맹주였던 오스만 투르크 제국과 겨눌 정도의 힘을 가졌기에 모든 일에 자신만만했다. 그런 만큼 그들은 도시 한가운데에 지금까지도 세계에서 제일 크다는 이맘 광장(1979년 이슬람혁명 이전에는 샤 광장이라 불렀다)을 건설했던 것이다. 그 크기는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의 두 배, 베니스의 성 마르코 광장의 7배다.
이곳을 찾은 날은 마침 무슬림(이슬람교도)에게는 성스러운 날인 금요일이라 그 넓은 푸른 잔디밭은 가족단위로 휴식차 나온 시민들로 뒤덮혔고, 몇몇 젊은 부부는 아이들을 광장을 도는 관광용 마차에 내맡겨 놓고는 그들만의 시간을 즐겼다. 광장 안쪽은 가족적인 분위기로 이렇게 따뜻한데, 광장 남쪽 한 변을 모두 차지하고 주인처럼 서 있는 모스크는 ‘차거운’ 청색(cool blue)을 발하며 이곳이 종교의 공간임을 말해준다.
코발트 블루가 빚어내는 청색은 우리의 청화백자에서도 그렇듯 고귀함과 고상함의 표상이다. 그 원산지인 이곳에서도 아무 데나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알라(하느님)를 모시는 모스크나 왕궁에만 쓰인다. 그럴 경우에도 전체를 장식하지 않고 사람의 출입이 빈번한 정면 입구, 내부에서도 가장 중요한 메카 쪽의 벽면, 그리고 하늘과 만나는 돔 부분에 집중적으로 사용됐을 뿐이다. 그런데 이곳의 청색은 우리의 청화백자와는 달리 왜 고상함을 넘어 차가운 느낌마저 주는 걸까.
청색은 그들이 삶을 이어가는 땅의 그것과는 정 반대의 색깔이다. 그들의 땅은 뜨겁고 메말랐기에 어쩔 수 없이 차갑고 시원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색깔로 인공의 축조물들을 장식할 수밖에 없었고 그게 바로 청색이었던 것이다. 이맘 모스크는 이 청색으로 장식돼 있다. 찾는 이에게 오아시스가 되어주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서아시아는 문명의 출발점에서부터 흙벽돌을 만들어 집과 도시를 건설했던 만큼 타일문화의 원류다. 점토를 이용한 도기의 제작에서도 앞섰다. 화력이 센 소나무 같은 화목을 구하지 못해 저온에서 굽다보니 강도가 떨어지는 약점은 있었으나 대신 장식성이 강한 채색기법을 발전시켜 그것을 극복했다. 이런 전통에 힘입어 후대에 이 지역에서 태어난 이슬람은 색채사용에서 천재적 재주를 보였다. 그들은 청색 외에도 황색 적색 백색 녹색 등을 사용해 화려하고도 다채로운 세계를 펼쳐 보였는데 주조는 어디까지나 블루 앤드 화이트, 즉 청화(靑華)였다. 중국에선 이슬람식 절을 ‘청진사(靑眞寺)’라고 불렀을 정도였다.
이 청화가 우리 나라에 처음 전해진 것은 고려시대로 원나라를 통해서였다. 그때는 불교사찰과 왕실에서만 제한적으로 쓰였다. 백자에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세종 때이고 크리스티 경매에 나온 작품은 15세기초, 세조 치세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슬람이 오랫동안 지배했던 중앙아시아의 모스크들도 이 청색을 즐겨 사용했는데, 걸작은 사마르칸트, 부하라, 이찬 칼로 등에 지금도 남아 있다.
무슬림들이 그토록 청색에 집착한 것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는 구할 수 없으나 생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을 내 손으로 구하고 말겠다는 의지 때문이었다. 인간은 요긴하긴 하나 지금 자기 손에 없는 것은 교환(상업거래)이나 약탈(전쟁 포함)과 같은 수단을 통해 충족해 왔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항상 그런 식의 물질적 방법으로만 문제를 해결한 것은 아니었다. 자기의 마음을 다스림으로써도 해결했다. 종교와 예술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해내는 데 큰 힘이 됐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만들어 내는 것이 디자인이라면 디자인도 그런 역할을 했다.
커다란 오아시스를 연상시키는 이맘 모스크의 정면 벽면은 훌륭한 디자인 작품이다. 같은 문양을 반복해 그려놓아 곧 싫증을 느낄 만도 한데 묘하게도 현실세계에선 좀처럼 접할 수 없는 리듬감과 자기완결성 같은 것이 느껴지면서 오히려 친근하게 다가온다. 순간 생명의 본질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끝없이 반복되는 문양이 생명의 세계는 무한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리라. 이런 식물문양과 함께 역시 반복을 거듭하고 있는 곡선이 강한 코란 서체(書體)와 기하학적 문양도 그려져 있다. 그러나 사람이나 동물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코란에서 그리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벽면 장식을 자세히 보니 디자인이 각기 다른 양탄자를 빈틈없이 이어놓은 것 같다. 벽면은 양탄자를 닮은 채색타일 모자이크로 장식하고, 바닥은 양털로 짠 양탄자로 덮었으며, 천장은 하늘의 형상인 궁륭(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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