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깊이듣기]말러/갈망을 분출하는 거침없는 선율

  • 입력 2000년 5월 17일 19시 34분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화 '키스'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화 '키스'
임헌정 지휘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말러 팬클럽’을 만든다. 부천필로 말하자면 월드컵이 열리는 2002년 4월까지 말러 작품 이외에는 아무 곡도 정기연주회에 올리지로 않기로 결정한 악단이다.

말러 팬클럽의 결성 소식은 때늦은 감도 있다. 말러 음악이 연주되는 공연장에 가면 여느때와 다른,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T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둥글게 모여 토론을 벌이는 장면이다. 금관이 늦다느니 음량배분이 어떠니 하면서. 지식과 열정으로 무장한 이들은 바로 말러 ‘팬덤’(fandom)을 구축하는 주인공이다. 이들이 세계 어디서나 새로 발매되는 말러의 음반들을 끊임 없이 사들이기 때문에, 음악 애호가의 태반은 말러의 음악을 껄끄러워 함에도 명지휘자마다 그의 음반 전집녹음에 착수하곤 했다.

탄생 100주년인 1960년과 사망 50주년인 1961년을 지나면서 불붙은 말러 붐은 ‘곧 사그라질 것’이라는 일부의 예측과 달리 번성일로를 걸어왔다. 베를린 필하모니 차기지휘자 사이먼 래틀이 내정되자 마자 베를린 필을 지휘해 내놓은 음반도 말러의 ‘미완성 교향곡’인 교향곡 10번이다. 세계 최고의 앙상블인 베를린 필이 래틀 치하에서 어떤 레퍼토리에 주력하게 될지 암시하는 대목이다.

무엇이 사람들을 이처럼 말러에 열광하게 하는 것일까.

영국의 음악평론가 세실 그레이는 말러와 동시대인인 작곡가 시벨리우스에 대해 ‘그의 음악속에 사람의 자취는 없다’고 말했다. 숲, 호수, 노을 등 대자연의 정경만이 그의 음악에 깃들어있다는 이야기다. 그에게 말러의 음악을 이야기하라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나왔을까. 그는 “말러의 음악은 사람의 자취로, ‘나’라는 1인칭 자아에 의해 굴절된 인간들로 가득하다”고 이야기했을지 모른다.

물론 말러의 음악에도 자연이 있다. 뻐꾸기의 울음과 소슬바람이 있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외면의 정경을 마음과 화면에 투사한 인상주의 (Impressionism)적 풍경화가 아니라 내면의 갈망과 외침을 밖으로 분출한 표현주의 (Expressionism)적 절규에 가깝다. 따라서 그의 작품 속에서 평정은 순간이거나 공들여 연출한 부분일 뿐이다. 그의 음악 텍스트에서 내면은 항상 격투를 펼친다.

그점에서 그는 자신의 시대인 ‘세기말 (Fin du Ciecle)’을 음악 분야에서 가장 잘 구현한 작곡가다. 내면의 인간본능을 파헤친 심리학자 프로이트, 열망과 탄식을 핏빛 화면에 뿌린 화가 뭉크, 자신을 항상 잠재적 수형자 (受刑者)로 여겼던 카프카 등이 말러와 시대의식을 공유한 인물들이었다. 또 하나 있다. 찬란한 색채로 당장 부패해버릴 듯한 관능을 화면에 담았던 화가 클림트. 구스타프 (Gustav) 라는 이름을 말러와 공유했던 그는 말러의 친우요 한때 연적이기도 했으며 그의 숭배자이기도 했다.

자, 왜 이제 다시 말러인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전원의 공동사회가 와해되고 인간 각자가 파편으로 흩어진 오늘날 현대에서 개인의 고독과 불안은 깊어만 간다. 그런 개개의 인간이 오늘날 말러의 음악에서 공감을 갖고 위로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유난히 말러팬 중에 젊은이가 많은 이유는? 소망도 절망도 더 깊고 예리하게 느낄 수 있는 나이, 그 뜨거움과 불안이 말러로 쏠리는 강력한 자장(磁場)을 형성하기 때문은 아닐까.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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