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세대]퇴직후 가족과 잘 어울리려면…

  • 입력 2000년 5월 18일 19시 50분


《‘늘 푸른 세대’의 마음은 언제나 푸른색(Green·그린)입니다. 머리가 희끗희끗(Grey·그레이)할 수도 있지만 틀림없는 인생의 황금기(Golden Age·골든 에이지)지요. 세련되고(Grace·그레이스) 온화하며(Gentle·젠틀) 한국의 오늘을 일궈낸 위대한(Great·그레이트) 50∼60대, 우리는 그들을 G세대라고 부릅니다.》

며칠전 가족치료연구소를 찾은 50대 ‘초보 퇴직자’. 아내가 걸레질하면서 “걸리적거리니 나가라”고 하길래 딸방으로 피신했다. 마침 옷을 갈아입던 딸은 “아빠, 노크도 없이 들어오세요?”하며 핀잔이고, 쑥스럽기도 해서 아들방으로 가 “차 한잔하자”고 했더니 아들은 “정신이 있으세요? 저 고3인줄 모르세요?”라고 면박이다.

▼소외감에 '젖은 낙엽' 신세 될수도▼

“이 퇴직자는 ‘내가 돈을 안버니 가족들이 모두 나를 내친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일본에서처럼 은퇴 가장들이 쓸어도 쓸어도 딱붙어 떨어지지 않는 ‘젖은 낙엽’신세가 된 거지요.”

이 연구소의 정은소장(가톨릭대 겸임교수·사회복지학)은 “우리 가장들이 한평생 일에 매달리다 보니 정작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는 은퇴후에는 가족과 대화하는 방법조차 모른다”고 지적했다.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된 퇴직자의 경우 가족과의 관계에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다는 분석이다.

‘초보 은퇴자’를 대상으로 한 반포종합사회복지관의 ‘퇴직후 풍요로운 생활설계’수강생인 이대성씨(53·경기 성남시 분당구 효자동)는 작년 5월 명예퇴직했다. “얼마전부터 아들내외와 살고 있는데 며느리와 한집에 있는 것이 아무래도 불편하지요.”

수강생인 강규모씨(64·서울 서초구 잠원동)는 예비역 장성. 그는 “부부 둘만 사는데 아내는 교회다 뭐다 해서 하루종일 바빠 혼자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 강좌를 담당하고 있는 사회복지사 김영우씨는 “평생 떨어져 살았던 부부가 하루종일 함께 있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어색해하고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며 “퇴직후라도 함께 공통의 관심사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수강생 19명중 절반 정도가 부부수강생. 함께 공부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어느 정도 적응에 성공한 사람으로 봐야한다. 가족학자들에 따르면 부부의 결혼만족도는 신혼초에 가장 높았다가 자녀 출산과 양육기에 차츰 줄어 청소년기에 가장 낮아지며 이후 서서히 증가, 자녀 성장이후인 탈부모기에 다시 높아지는 U자형 곡선을 그린다.

▼부부 공동관심사 만들어 제2신혼을▼

노부부의 태도와 노력에 따라 ‘제2의 신혼’을 찾을 수 있는 셈.

2년전 퇴직한 최병철씨(64·경기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는 아내 이연숙씨(64)와 함께 수강하고 있다. 최씨가 “아내와 너무 많이 붙어 있으니 가장의 권위도 떨어지고 사소한 일로 티격태격하게 된다”고 불편함을 토로한데 반해 이씨는 “둘밖에 없잖아요”라며 즐거운 표정이다.

은퇴후에는 지금까지와 달리 부부간 가사노동 및 육아 분담에 대한 협상과 재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 함께 사는 아들부부가 맞벌이라 네 살된 손자를 봐주고 있는 구훈모씨(61·경기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는 퇴직한 남편과 ‘당번’을 정해 갈등을 해결했다.

“남편이 친구들 만나러 자꾸 나가고 나만 애를 보게 되자 ‘나도 일이 있는데’하는 생각에 억울하더라구요. 이 문제로 다투다가 결국 하루씩 교대로 당번을 맡자고 했지요.”

강남대 고양곤교수(노인복지학)는 “퇴직후 가족관계에서도 준비가 필요하다”며 “3세대 동거, 실버타운입주, 자녀와 가까이 사는 형태 등 자신에게 적합한 주거생활을 결정하고 가족관계도 재정립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진경기자> kjk9@donga.com

▼"퇴직후 '활력인생' 도와드려요▼

2000년 국민수명 75세. 은퇴를 맞은 50∼60세의 ‘풍요로운 노후 15∼25년’을 위해 반포종합사회복지관(02-3477-9811)은 충실한 준비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12일 1기 강좌가 시작돼 6월23일까지 매주 금요일(오전9시반) 종합강좌와 6월30일까지 매주 수 금요일 (오전8시반) 컴퓨터교육을 진행한다. 참가비 4만원.

건강 경제 가족관계 여가문제 등 4가지 주제가 중점적으로 다뤄진다. 강좌와 함께 컴퓨터 및 인터넷교육을 병행하고 있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맞춰가자는 의도. 2기 강좌는 7월14일부터 8월30일까지 진행된다. 문의 02-3477-9811(내선 233)

가정교육상담연구소(02-523-4203)와 가족치료연구소(02-784-7509)에서는 퇴직후 생활설계와 상담 도움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