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나오는 생생한 예.
미국의 바이오사이트사는 갓 태어난 아이의 탯줄에서 나오는 모든 혈액세포에 대한 소유권을 미 특허청과 유럽 11개국으로부터 얻어냈다. 탯줄 혈액은 백혈병 등 각종 질병 치료에 유효한 성분이 들어 있다. 누구의 탯줄 혈액이든 그것을 질병치료에 사용하려면 이 회사에 돈을 내야 한다. 바이오사는 탯줄 혈액을 급속 냉동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다른 사람이 탯줄을 질병치료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제지할 수 있는 권리까지 얻어냈다. 탯줄은 각 개인의 것인데, 어떻게 한 회사가 소유권을 갖는단 말인가. 어이없는 일 같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질병 치료를 위해 정상적인 유전자를 사용하려 해도 그 정보를 이미 밝혀낸 어느 회사엔가 사용료를 내야 한다. 현재 세계 유수의 생명공학 기업들이 유전자 특허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이런 정황을 잘 알고 있어야 생명공학의 흐름을 제대로 짚어 볼 수 있다고 이 책은 강조한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니 유전자 복제니 하는 것은 더 이상 낯선 말이 아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유전자 복제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고 그 이면에 어떤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는지, 그런 것들이 한국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 것인지, 그리고 한국에서의 생명공학은 어느 단계까지 와 있는지 등등에 관한 정보는 접하기 어려운 게 우리 현실이다.
이 책은 이같은 질문에 답하기 위해 쓰여졌다. 특히 생명공학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주요 쟁점에 관한 최신 정보, 한국 생명공학의 현주소에 관한 이야기가 두드러진다. 우리 이야기가 들어 있어 현실감이 넘친다. 이 점이 이 책의 매력이자 기왕의 책들과의 차이점이다.
동물 복제 강국 한국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오는 2008년이면 복제 한우 암소 10만마리가 등장할 것이다. 세계 최고의 수준이다. 이미 50여마리의 소가 복제됐고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 복제 중이다. 2년 후면 우리 식탁에 복제소가 오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복제소가 인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검토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저자는 이를 우려하고 있다. 이 책은 이외에도 유전자 조작식품을 먹어야 할 것인가, 복제기술을 이용해 아기를 얻겠다는 불임부부의 주장을 받아 들여야 할 것인지 등 생명공학에 관한 쟁점들을 객관적으로 정리해 놓았다. 그러나 수정 과정, 정자은행 난자은행, 시험관 아기 등에 관한 대목은 기존의 책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아쉬움으로 남는다. 222쪽 7500원.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