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새로 펴낸 ‘인간의 오점’은 20세기 후반의 미국 사회를 그리고 있는 3부작의 완결편으로 출간 즉시 화제가 되고 있다.
3부작의 첫책은 ‘미국의 목가(牧歌)’(American Pastoral, 1997)였는데, 반전운동이 한창이던 60년대 후반, 베트남전쟁을 반대하여 방화를 저지르는 딸과 그 때문에 평생을 쌓아올린 아버지의 명예와 미국적 가치가 훼손되는 과정을 그렸다.
두 번째 소설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1998)는 매카시 선풍이 미국을 휩쓸던 50년대, 라디오 앵커인 부인이 역시 앵커인 남편을 공산주의자로 고발하는 과정을 통해 미국 사회의 맹목성과 비인간화를 다루었다.
이번 소설은 미국 사회가 신봉하고 있는 정치적 공정성(Political Correctness)의 표피성에 대한 비판이라 할 수 있다.
책을 읽다보면 오점(Stain)이 모니카 르윈스키의 스커트에 묻은 얼룩을 비유한 것임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다.
미국 동부 어느 조그만 대학의 학장이던 일흔 한 살의 고전학자 콜맨 실크는 강의시간에 계속 결석하는 두 학생에 대해 무심코 “살아있기나 한가, 아니면 유령(spook)인가?”하고 말했다가 인종주의자로 몰려 강제로 퇴직당하게 된다. 결석생들이 흑인이었기 때문이다.
그 충격 때문에 부인은 심장마비로 숨지고 실크는 울화에 시달리다가, 서른 네살의 청소부 여인과 연애에 빠지게 된다. 그녀는 전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 이혼한 일자무식이지만 실크에게 삶의 활기를 가져다준다. 그러나 맹목적 정의감에 넘치는 어느 여교수는 퇴직 학장이 청소부여인을 성적으로 농락하고 있다고 음해한다. 이 모든 소동은 그러나 콜맨 실크가 감추고 있는 비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가 오십년간 숨겨온 비밀, 이미 작고한 부인에게도 자식들에게도 친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은 비밀, 그것은 그가 지금껏 유태인처럼 행세해왔지만 실제로는 흑인혼혈이라는 사실이다.
필립 로스가 이번 소설을 통해 고발하는 것은 미국 사회지만 현대 사회의 보편적 진실을 담고 있다. 세간의 통념이 무모하게 적용될 때 개인의 도덕적 진실은 냉혹하게 짓밟힌다.
또, 유행하는 사상과 집단적 선동 앞에서 판단력이 마비된 대중들은 맹목적 폭력을 정의로 착각한다. 필립 로스의 비관적인 경고는 소설 속의 다음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떠들고 있는 것은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이영준(하버드대 동아시아학과 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