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조세희의 연작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1978년 초판 발간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도시하층민의 고통을 간결한 문체와 환상적 분위기로 잡아낸 명작’이라는 찬사를 들으며 청년층의 필독서로 자리잡아온 작품. 올 여름부터는 작가의 장남 중혁씨(29·출판사 열화당 근무)가 문을 여는 출판사 ‘이성과 힘’에서 책을 낸다.
“1970년대엔 정부에 의해 판매금지도, 수거도 여러번 겪었지요. 어려운 시절에 책을 ‘잘 지켜준’ 문학과 지성사에 감사를 드립니다.”
작가는 “더 나이들기 전에 작품세계를 다시 정리하겠다는 생각으로, 책의 체제를 바꾸게 됐다”고 밝혔다. 작품을 쓰던 30대의 상황을 ‘작가의 말’로 정리해 책 서두를 장식하고, 장정과 판형도 새롭게 꾸밀 계획.
‘난쏘공’은 출간 18년째인 96년, 당시 36년째를 맞은 최인훈의 ‘광장’과 나란히 100쇄 돌파의 기록을 세웠다. 현재 누적 판매부수는 52만부. ‘밀리언셀러’가 되기에는 갈 길이 멀지만 지금도 매년 2∼3만부가 꾸준히 나간다.
문학과지성사 관계자는 ‘중고등학교의 추천 필독도서 명단에 오르기 때문인지, 방학이 시작될 7,12월이면 대형서점 소설부문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오르는 저력을 여전히 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작품이 가진 사회성과 함께 여러 가지 상징과 기법을 동원한 점 때문에 많은 주목을 받아온 것 같습니다. 사실 수많은 상징과 다양한 서술기법은 판금을 피하기 위한 방안이기도 했는데….”
‘작품세계를 다시 정리’하겠다는 작가의 뜻은 ‘난쏘공’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10년 동안 미완으로 남겨두었던 두 번째 장편을 올해 마무리하겠다는 결심이다. 120세까지 죽지 못한 주인공을 통해 한국 현대사가 갖는 고난의 뿌리를 조명한 작품이다. 마지막 손질을 앞두고 장고(長考)를 거듭중인 이 작품에 이어 세 번째 장편도 구상을 마쳤다. 90년대를 배경으로, 20대 50대 70대의 세 인물을 등장시켜 진리 자유를 향한 20세기의 열망이 ‘불의 개울’을 통과하는 각성으로 이 시대에 이어짐을 보여줄 계획이다.
그는 지난학기를 끝으로 경희대 국문과 겸임교수직을 그만두었다. “몸이 말썽을 부리는데다, 남은 날들까지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힘없이 미소를 지었지만 그의 표정에서 훅하는 뜨거움이 느겨졌다. ‘불의 개울’을 통과하며 만년의 창작열을 태우겠다는.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