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이무지치 연주의 ‘사계’도 몇십년 동안 70만장 안팎의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으니, 예외적인 현상임에 틀림없다. 본인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방송에서 본 그는 자신의 성공이 그다지 대견하지 않은 듯 싶었다.
“미국이나 이탈리아에서 났다면, 세계 톱이겠죠.”
톱이 아니었단 말인가? ‘디바’(여신)라는 말을 낳았던 마리아 칼라스의 영광을 본보기로 삼는다면 그는 톱이 아니다. 그러나 일세를 장악했던 칼라스나 조안 서덜랜드의 시대는 지났다. 물기가 느껴지는 안젤라 게오르규, 벨벳 천같이 부드러운 르네 플레밍…. 지금은 여러 톱 클래스 소프라노들이 다양한 목소리의 스펙트럼을 형성하고 있는 시대다.
조수미의 노래는 그중에서도 편차없이 안정된 평가를 받아온 편이다. 한때 소프라노계를 장악할 것으로 여겨졌던 캐슬린 배틀이나 셰릴 스투더가 지금 어디에 있나? 배틀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서 거들먹거리다 오스트라시즘 (투표추방)을 당한 뒤 소식이 없다. 스투더의 몰락은 기자가 직접 목격했다. 98년 바이로이트 음악축제에서 본, 숨이 딸리고 음정이 불안하던 그의 모습.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반면 조수미는 날로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무엇이 그의 노래에 숨을 죽이도록 하는 것일까. 기자는 그의 목소리가 가진 ‘가벼움’을 이유로 든다.
진지함이나 성숙미가 결여된 가벼움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소재로서의 가벼움이다. 높은 공명점을 갖고 있으면서 퍼짐성이 없는 그의 목소리는 하이 콜로라튜라 (기악적 기교의) 소프라노의 전형이다. 그렇지만 그의 목소리는 하이 소프라노 중에서도 에디타 그루베로바의 목소리처럼 단단하고 가볍기만 한 것이 아니다. 조수미의 가벼움은 ‘들어올리기 쉬운’ 가벼움의 차원을 넘어 수소나 헬륨을 채운 기구처럼 ‘상승하는’ 가벼움이다.
그의 목소리는 한 악구 안에서도 높아질수록 커지며, 환하게 밝아진다. 또한 정교하게 깎아낸 듯 유연하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노래로 알려진 리햐르트 시트라우스의 오페라 ‘낙소스섬의 아리아드네’중 ‘고귀하신 왕녀님’. 초인적으로 높은 음표에서 그의 노래는 휘황한 빛을 발한다. 가볍고 단단한 목소리가 살풋 떠올라, 구름을 뚫고 운해(雲海)을 내려다보며 탱탱하게 창공 위에서 공명한다. 금빛 햇살이 비치는 가운데.
그러므로 조수미가 카라얀에게 발탁됐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카라얀 휘하의 베를린 필이 지어낸 음색은 뜨거움을 넘어 백열적 (白熱的)이다.
그의 사운드가 자아내는 비상한 집중력은 조수미의 그것과도 유사하다. 두사람은 첫 순간부터 서로를 알아보았을 것이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기자는 조수미가 리햐르트 시트라우스의 음악에 더 집중하고 ‘특화’ 했으면 싶다. 시트라우스 역시 뜨거움을 넘어 하얗게 빛나는 사운드의 가벼움을 추구했던 작곡가다. 그는 카라얀이 가장 사랑했던 작곡가이기도 했다.
조수미가 주제가를 부른 드라마 ‘허준’의 말투로 글을 맺어본다. “노래에는 여러 가지가 있사오나, 마음이 무겁고 가라앉는 병에는 조수미의 노래를 들어야 할 줄 아옵니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