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탈리아요리의 '달인' 정찬대씨

  • 입력 2000년 5월 25일 19시 59분


신경증적인 행동이 예술가의 특징중 하나라면 요리사는 예술가임이 틀림없다. 국제이탈리아외국인요리학교(ICIF)가 주최로 18일 이탈리아에서 열린 ‘이탈리아 세계요리대회’에 우리나라 대표로 참가한 정찬대 요리사(36)는 하루 반갑 피우던 담배를 대회를 앞두고는 두갑 이상 태웠다. 늘 입이 말라 갈증을 느꼈으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라는 말을 1만번쯤 반복해 중얼거렸다.

서울 힐튼호텔 이탈리아음식점 ‘일폰테’ 주방장인 그는 지난해 쌀요리를 주제로 열린 첫 대회에서 이탈리아식 볶음밥인 리조토를 만들어 2등을 차지했다. 제한시간을 30분이나 넘겨 30점을 감점 당하고도 올린 개가였다.

한국 미국 일본 중국 독일 캐나다 브라질 대만 태국 등 9개국의 일류 요리사 9명이 참가한 이번 대회에는 지난해 우승한 독일인 홀거 쭈르브뤠겐이 또 나왔다. 이탈리아 북부의 휴양도시 스트레사의 레지나 팰리스 호텔 주방에서 서로의 기량을 자랑하는 3시간 동안, 정씨와 쭈르브뤠겐은 서로의 요리를 힐끗힐끗 쳐다보는 등 신경을 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번 대회의 테마는 올리브유. 이탈리아 음식에 폭넓게 사용되는, 우리로 치면 참기름과 같은 올리브유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용하느냐가 심사의 관건이다. 이탈리아 요리의 요체인 재료의 ‘내추럴’한 맛을 어떻게 살리느냐도 두말할 것 없이 중요.

정씨는 전채요리인 ‘안티 파스티’로 승부했다. 그는 △올리브 안에 아스파라가스 샐러리 피망 등을 다져넣고 칠리소스와 올리브유를 뿌려 치즈바스켓 안에 넣은 것 △새우 문어 조개 농어 등을 갈아 뭉치고 레몬소스를 뿌려 맛을 낸 것 △호박 피망 버섯 가지 아스파라가스 등을 석쇠에 구운 후, 정어리를 이겨 만든 소스를 뿌린 것 △오리고기에 구운 올리브를 박아 넣은 것 등 4종류를 접시 위에 아기자기하게 늘어놓았다. 올리브와 허브 등 재료 자체의 맛과 향을 인위적인 소스로 덮어 버리지 않도록 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커다란 바닷가재를 익혀 몸통을 부수는 쭈르브뤠겐의 액티브한 모습에 시선을 빼앗겼던 취재진은 정씨가 음식들을 하나하나 다소곳하게 접시 위에 펼쳐놓기 시작하자 ‘와’하는 소리와 함께 주위에 몰려들었다.

이탈리아 음식 전문기자와 비평가들로 이뤄진 전문가 집단, 이탈리아 일류 요리사들, 대회를 협찬한 올리브유협회 관계자 등 18명이 맛을 음미하며 요리를 심사했다. 다음날 시상식에서 정씨는 종합 1위와 함께 기자와 비평가들이 주는 특별상도 받는 등 2관왕으로 떠올랐다. 2위는 찻잎에 그을린 바닷가재에 올리브를 결들인 독일의 쭈르브뤠겐, 3위는 게살을 넙치에 곁들인 태국의 르웨트 스리라체이가 받았다.

각국 각계 인사 400여명이 참석해 밤늦게까지 계속된 축하 파티에서 브루노 리브라논 ICIF총장은 정씨에게 “완벽한 요리였다. 더 이상 줄 상이 남아있지 않다”며 극찬했다.

정씨는 그러나 자정이 되기 전에 빠른 걸음으로 호텔에 돌아와 아내에게 국제전화를 걸었다. 이튿날 그는 상금으로 받은 미화 7000달러의 일부로 아내를 위한 란제리를 사들고 귀국했다.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아내와 두 아들을 위해 식탁을 차려내는 그는 특공연대 출신이다.

이탈리아 요리의 ‘달인’이란 별명에 맞지 않게 정씨는 이탈리아에서의 일주일 내내 된장찌개와 김치가 먹고 싶어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스트레사(이탈리아)〓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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