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저술가인 저자들은 법칙의 편집자일 뿐이다. 이 법칙의 진정한 창안자는 손자(孫子) 클라우제비츠같은 전략가, 비스마르크같은 정치가, 파렴치범 카사노바까지 3000여년에 걸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권력게임에서 승자가 됐던 인물들이다. 각 법칙에는 이들이 남긴 성공담 실패담 경구들이 수험서처럼 조목조목 정리돼 있다.
서문은 당신 자신이 누구이든 어디에 있든 결코 권력게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의식화하는 워밍업 단계. 저자들은 권력이 기본적으로 도덕과 관계없다는 사실부터 일깨운다. 그러니 선악을 따지려하기보다는 상황을 파악하는 눈이 중요하다는 것.
권력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익혀야할 첫번째 기술은 감정통제다. 저자들은 ‘기만의 기술을 익히는 것은 삶의 미학적 즐거움에 속하는 일’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나 목차만을 훑어봤을 때 책의 법칙들은 진부하게 다가온다. 제2법칙 ‘친구는 너무 믿지 말고 적은 이용하라’도 풍파많은 세월을 거쳐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체득했을 법한 경구 아닐까.
하지만 이 뻔해보이는 말들에 힘을 싣는 것은 저자들이 제시한 사례다. 1937년 중국 공산당이 국민당과 내전을 벌이면서 동시에 일본군과도 싸워야할 상황에 직면했을 때 당내 다수가 ‘일본군과의 싸움은 국민당에게 맡겨두자’고 했지만 마오쩌둥은 반대했다. 일본같은 강적과 싸우는 것은 하층계급 출신들로 이루어진 공산당 군대에게 아주 좋은 훈련이 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의 계산은 정확했다. 훗날 한 일본인이 중국침략을 사과하려하자 마오쩌둥은 “그럼 나도 당신들한테 감사하지 말아야 하는 겁니까?”라고 반문했다.
주위에 적이 없으면 게을러진다. 그래서 나 자신을 위해서라면 적을 친구로 바꾸지 말고 적으로서 이용해야 할 필요도 있다. 반면 우정과 사랑은 냉정한 판단을 가로막는다. 그래서 철학자 볼테르는 이런 냉소적인 경구를 남겼다.
‘주여, 나를 친구들로부터 보호해주소서. 적들은 나 혼자서도 감당할 수 있나이다’
국가든 기업이든 권력이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기보다는 다원화된 여러 조직에 분산돼 있고 그 각각의 유기적 결합이 강조되는 21세기. 절대왕정의 궁정을 모델로 한 이 법칙들이 얼마나 실효성있을까는 곰곰이 따져볼 문제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의의는 저자들이 인간 심연의 욕망들을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적나라한 모습을 인정한 위에 오로지 나의 안위를 위해서 적과 타협하고 때로 그들을 스승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반면교사’로 가르치는 것이 이 책의 숨겨진 의도는 아닐까. 미국에서는 98년 발간. 옮긴이는 전문번역가 정영목. 1, 2권 총 568쪽. 각권 8500원.
<정은령기자>r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