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북한 건축 또 하나의 우리 모습'/이왕기 지음

  • 입력 2000년 5월 26일 20시 08분


사회주의와 주체사상의 이념이 짙게 풍기는 곳, 평양.

그곳 북한의 현대 건축과 도시를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거대하고 ‘권력적인’ 규모, 그래서 지극히 사회주의적 공간이라는 생각 정도가 아닐까. 남북정상회담도 열리는데 우리 건축의 반쪽을 외면해왔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지금.

1970년대 김정일은 이렇게 말했다.

“건축은 예술이다. 건축에서 모방은 도식과 유사성을 낳는다. 건축 창작은 결코 반복적이어선 안된다.”

이후, 평양 거리엔 획일성에서 벗어나 새롭고 다양한 형태의 건축물이 등장했다. 특히 고층아파트의 변신이 두드러졌다. 평양 광복거리의 S자형 Y자형 바람개비형 아파트(위에서 봤을 때), 통일거리의 계단형 아파트(옆에서 봤을 때) 등. 모두 조형미가 빼어나고 도시 경관을 잘 살려주는 건축물이다. 답답하고 획일적인 서울의 아파트보다 여유가 있고 생동감이 넘친다.

획일적인 북한 사회의 다양한 아파트, 다원화 사회인 우리의 획일적인 아파트. 배치형태와 조형이 다양하다고 해서 반드시 건축의 질이 우수한 것은 아니지만, 여기 나오는 서울과 평양의 아파트 비교는 새롭고 흥미롭다.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다.

이 책을 열면 평양의 건축과 도시가 가감없이 다가온다. 우리의 시각에 의해 굴절되지 않은 북한 현대 건축 그대로.

이 책은 광복 이후 북한의 현대건축물과 도시설계의 흐름 및 양식적인 특징, 관련 정보를 알기 쉽게 소개하고 있다. 이 분야의 첫 단행본인데다 시의적절하다.

저자(대전 목원대교수)는 북한의 건축과 도시를 이데올로기의 산물이 아니라 문화 그 자체로 보고자 한다. 그래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북한 현대건축의 주류는 당연히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건축양식이다. 배치 및 평면의 구성은 중심축과 대칭을 중시한다. 건물의 한 층 한 층은 높고 기둥은 육중하다. 문과 창 주위엔 장식이 풍부하다. 혁명을 향한 인민의 신념을 표현하기 위해 수직선을 강조한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남측과의 경쟁을 의식해 주체사상과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한 건축물이 속속 등장했다. 만수대의사당 고려호텔 5·1경기장 유경호텔 주체사상탑 개선문 등등. 아파트와는 대조적이다.

저자와 함께 그 평양 거리를 거닐어 보자. 도시 중심부엔 김일성 동상과 혁명기념물. 어느 건축물이든 최고 통치자 관련 시설물과 이어져야 한다. 이런 특징이 평양처럼 강렬한 도시는 없다고 한다.

그래서 세계 건축가들이 주목하는 평양. 통일이 된다면 이 평양을 어떻게 할 것인가. 누군가는 사회주의 냄새를 완전히 없애거나 아예 재개발하자고 말할 지 모른다. 하지만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건물을 없앤다고 역사에서 사회주의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보존해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평양은 도시 건축사적으로 한 시대의 산물이자 세계적으로 훌륭한 관광자원이다.”

쓰라린 역사의 흔적, 평양. 이곳을 우리는 끌어안아야 한다. 세월이 흐르면 이곳 역시 소중한 문화유산이 될 것이기에. 바로 이 책의 메시지다. 314쪽, 1만2000원.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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