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림의 데뷔시집 ‘생일’ (문학동네 펴냄)을 빛나게 하는 것은 그렇다면…. 고통마저도 한꺼풀 뒤집어 보며 흐음, 고통의 가죽 또는 속살은 이렇게 생겼군, 이라고 주석붙일 수 있는 것. 대부분의 사람으로서는 접해보지 못했거나, 혹 접해본 사람이라면 그 어마어마한 하중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그 아픔의 이면을 냉정하게 비추어 보고, 때로는 해학의 시선까지도 던져보는 것. 그런 이유 때문일까.
42세. 계간 ‘내일을 여는 작가’ 봄호에 시 4편을 발표하면서 등단. 말기암으로 투병중. ‘그래, 뱃속에 가득 찬 건 복수다/모르지 않아/그래도 복수를 가득 담은 그릇이 되고 싶지 않아/(…)/그래, 이렇게 고쳐 부르겠다/-배에 용서가 가득 차니/보기 좋았더라’ (배에 용서가 가득 차니)
육체의 고통속에서 그는 정화(淨化)의 꽃을 얻으려 한다. ‘늑골 밑은 뻘밭이에요/하루에도 몇 번씩/게들이 기어나와 살을 깨뭅니다/쿡쿡 찌릅니다/죽었니? 살았니?//뻘흙 속에 발을 묻고 옆구리에서 수련을 피워내고 싶어…’
그러나 어찌 되어 갈 것인가. 같은 시의 제목과도 같다. ‘벌레 먹은 나뭇잎 하나/가지 끝에서 흔들립니다/그 후는 아무도 모릅니다’(오리무중)
다만 꺾이지 말아야 하리라. ‘이 둥그런 물의 방에 닿아/눈사람처럼 녹아버리지 않으려면/서둘러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아야 한다/햇빛과 바람으로 눈을 씻고/두 무릎에 힘을 주어야 한다’(눈물)
무릎에 힘을 주고, 눈물 속에 녹아버리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도, 시인은 때로 가장 처연한 멜로디를 흘려보낸다. 또다른 길을 준비한다. ‘내가 사랑하는 이 방에/비가 오면 물구슬발 드리워지니/한 번 방문해 주게/(…)/와서 내가 없더라도/구태여 찾지 말게/추억 같은 걸 서랍에서 뒤지지도 말게’(수렴지실·水簾之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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