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추기경이 심산 김창숙(心山 金昌淑·1879∼1962)선생을 기념하는 ‘심산상’을 받고 24일 선생의 묘소에 이 소식을 알리는 고유제(告由祭)를 드리며 절을 올렸다. 참신(參神) 종헌(終獻) 사신(謝神), 세 차례에 걸쳐 재배(再拜)를 드리니 총 여섯 번의 큰 절이다.
주변 사람들의 입이 간질간질한 가운데 “심산선생에게 하느님의 영원한 안식이 함께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큰 절을 올린 것”이라는 지당한 말씀 한 마디.
그런데 심산선생에게 ‘하느님의 영원한 안식’이라니?
심산선생이 믿었던 유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혼기(魂氣)는 하늘로 돌아가고 형백(形魄)은 땅으로 돌아가므로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하늘과 땅에 흩어진 음과 양에서 그를 찾는다는 뜻”(‘예기·禮記-교특생·郊特牲’)이라고 가르친다. 유교에서는 사후(死後)의 심판이나 영생이 이루어질 내세(來世)를 인정하지 않으니, 김추기경의 절을 받거나 하느님의 영원한 안식을 함께할 영혼도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천지에 흩어져 있는 심산선생의 혼백이 김추기경의 마음을 몰랐을 리 없다. 일제의 압제에도, 이승만정권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꼿꼿한 선비로 살다간 심산선생과 불의에 맞서며 시대의 양심으로 살아 온 김추기경이 만나는 데는 절을 하건 기도를 드리건 이미 이심전심(以心傳心)이 있었을 터이다.
형식의 권위로 내용의 부족함을 메워야 하는 중생들이야 입방아라도 실컷 찧고 싶었겠지만 이미 형식을 압도해 버릴 만큼 내용이 그득한 삶을 살아온 김추기경이기에 누구도 그 앞에서 ‘절’이라는 형식을 논할 수 없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형식과 내용을 일치시켰던 기억이 별로 없는 범인들은 명칭에 해당하는 실재가 있느니 없느니 하며 실념론(實念論) 유명론(唯名論)을 떠들어 왔지만, 이미 삶 속에서 형식과 내용의 구분이 헛된 집착임을 깨달았음에야 거칠 것이 없다.
늘상 벌이던 왁자한 술판이라도 경건한 5·18 광주에서야 하루쯤 조용히 쉴 수 있지 않았겠느냐며 형식을 탓하는 소리에 변명 한 마디 못하고 혼비백산(魂飛魄散)하는 무리들하고야 비교할 바 아니다. 비난이 쏟아지자 술마시고 부리던 호기는 간 데 없이 추풍낙엽으로 무너져 내리고 마는 것은 이들에게 내세울 것이 아직 형식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형식이 흔들리면 내용의 빈약함은 곧 드러난다.
개혁적 정치인들에게 기대를 거는 것은 이미 바닥을 친 채 올라갈 길을 잃어버린 정치권의 신뢰지수에 비해 이들의 가능성이 상대적 우위를 누린다는 것에 불과하다. 이를 절대적 우위로 착각했다면 문제가 생겨나지 않을 리 없다. 세상의 기대가 자신의 실상을 넘어섰다면 실상이 기대를 따르도록 노력하는 것만이 세상에 보답하는 길임을 이 똑똑한 사람들이 모를 리 없다. 이제 더 이상 위선적 형식으로는 내용의 부실을 감출 길 없는 ‘인터넷 언론’의 세상에서 ‘내 허리 굽혀 세상을 바로 잡으리라’는 헛된 망상으로는 온전한 입신출세의 길을 기약하기 어렵다.
올해 일흔여덟의 김추기경, “나이 70에 마음가는 대로 해도 세상 이치에 어긋남이 없었다”던 공자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70여생을 진실되게 살려고 노력해 왔다면 몸과 마음이 세상 이치와 함께 흘러가는 것이야 어느 종교, 어느 학파든 다름이 있을 리 없다. 이 큰 스승이 우리와 오래도록 함께하기를 심산선생도 간절히 ‘기도’하고 계실 게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