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닥터의 건강학]'갑상선 질환' 서울대 조보연교수

  • 입력 2000년 5월 30일 20시 00분


매주 화, 목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2,3시까지 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조보연교수(52)의 진료실에서는 때 아닌 ‘도덕수업’이 펼쳐진다. 학생은 10대 여고생부터 60대 할머니까지 갑상선질환자 200여명.

“약을 먹기전 부모님에게 절하고 먹어야 약효가 있습니다.”

부모의 돈으로 약값을 내는 학생에게 조교수가 꼭 하는 말이다. 얼핏 들으면 부모에게 고마워하라는 말처럼 들리지만 제때 꼬박꼬박 정성을 다해 약을 먹으라는 뜻이 담겼다. 조교수는 폐경기 이후 중년 여성에게는 “남편이나 며느리만 달달 볶지 말고 일찍 일어나 집 앞을 쓸어보세요”라고 말한다.

“늙어서 잠도 없는데 집안에 있으면 짜증이 나기 쉽지만 빗자루로 앞마당을 땀흘려 청소하면 몸도 건강해지고 동네 사람에게 칭찬들어 기분도 좋아집니다. 환자 상태가 좋아지면 치료에도 도움이 되니 일석이조입니다.”

▼도사건강법 ▼

도사(道士). 조교수의 별명이다. 돈 명예 등 범인(凡人)의 관심사에는 도통 관심이 없어 생겼다. 술은 거의 안마시고 골프도 안친다. 고교시절 ‘룸비니’란 불교학생단체에 가입한 이후 믿고 있는 불교의 영향이 컸다.

그의 건강법도 도사같다. 적게 싱겁게 먹고 채식을 주로 한다. 출퇴근은 지하철을 이용하는 등 자가용을 거의 타지 않고 가급적 걷는다. 주말이면 아내와 함께 절이 있는 산을 오른다.

“산은 몸에도 좋지만 경쟁이 필요없어 정신건강에도 좋아요. 올라가다 힘들면 쉬고, 가고 싶으면 가고….”

스트레스도 조교수를 피해간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마음을 편하게 먹기 때문이다. 지나간 일은 생각하지 않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자업자득’이라고 여긴다. 전생에 잘못한 일에 대한 대가를 현생에서 치른다는 ‘연기설(緣起說)’을 믿기 때문.

▼보약은 소용없다 ▼

“갑상선질환의 대부분은 자가진단이 가능하고 말기 갑상선암도 수술 뒤 방사선으로 치료가 가능한 만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갑상선에 이상이 생기면 목이 심하게 붓거나 혹이 생기고 호르몬검사 초음파검사 등으로 쉽게 발견된다는 얘기. 또 유전적 경향이 강해 가족력을 보면 예측이 가능하다는 것.

조교수는 “갑상선질환으로 기운이 없다고 염소 뱀 등 보약을 먹는 것은 다 부질없는 짓”이라고 충고한다. 호르몬 이상이기 때문에 밑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것.

갑상선질환자가 특별히 가려야 할 음식은 없다. 요오드가 많이 든 해조류가 갑상선질환의 원인으로 알려졌지만 아직 입증된 바 없다. 항진증 환자중 30∼40%에게 나타나는 안구돌출증은 흡연이 원인. 스트레스는 갑상선질환의 원인은 아니지만 기질을 가진 사람을 발병시키는 경향이 있다. 고부갈등 남편외도 자녀의 입시실패 등을 겪은 직후 갑상선질환에 걸린다는 것.

▼세계를 무대로 ▼

조교수는 학창시절 갑상선학을 국내에 도입한 이문호교수(현 울산대 서울중앙병원)와 방사선치료의 개척자인 고창순교수(현 가천의대 길병원) 밑에서 기초를 닦았다. 1982년부터 4년간 미국 하버드의대 베스이스라엘병원 연구원 시절에는 지도교수 시드 잉그마교수에게 ‘학문의 열정’을 배웠다.

세계적인 갑상선질환 권위자였던 잉그마교수는 제자가 연구하다가 벽에 부딪히면 해결방법을 자상하게 알려줬다. 연구에 필요한 자료나 실험재료를 구하기 위해 전 세계 동료나 제자에게 연락하고 부족하면 직접 찾아가는 스승을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조교수는 1986년 귀국하면서 ‘내 실험실에서 내가 연구한 논문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날까지 열심히’를 결심했다. 3년 뒤 그는 서양인과 달리 한국 일본에는 갑상선의 기능을 억제하는 ‘차단형 항체’가 많다는 사실을 유럽내분비학회에 발표하면서 국제무대에 데뷔했다. 1995년에는 갑상선항진증을 일으키는 자가항체가 개인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규명, 세계갑상선학회에서 발표했다.

<이호갑기자>gdt@donga.com

■어떻게 뽑았나

갑상선질환 베스트 닥터로 서울대 내분비내과 조보연교수가 뽑혔다. 이는 전국 14개 병원에서 갑상선질환을 담당하는 교수 49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다.

연세대 일반외과 박정수교수는 ‘갑상선 수술’하면 연상되는 외과의사. 1985년 이후 5800여례의 갑상선 수술은 세계 최고의 개인 수술 기록이다.

지난해초 그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최소 침습 갑상선 수술’은 수술후 1,2일만에 환자가 퇴원할 수 있고 통증이 거의 없는 획기적 수술법.

박교수는 6월27일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일본내분비학회에, 7월29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세계두경부외과학회에 나가 초청강연을 하는 등 이 분야의 세계적 ‘칼잡이’로 통한다.

가톨릭대 내분비내과 이광우교수는 갑상선질환 가운데 항진증 환자를 요오드요법으로 치료하는 권위자이며 연세대 내분비내과 김경래교수는 갑상선암 전문가.

이밖에 △오승근(서울대 일반외과) △양정현(성균관대 삼상서울 유방내분비내과) △고석환(경희대 일반외과) △고창순(가천의대 길병원 내분비내과) △강성준(원주대 기독교병원 일반외과) △구범환(고려대 구로 일반외과) △김광원(성균관대 삼성서울 내분비대사내과) △홍석준(울산대 서울중앙 일반외과) △유명희(순천향대 내분비내과) △김영설(경희대 내분비내과) 교수 등도 고른 추천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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