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시리즈 중에서 막내뻘인 ‘세계사 시인선’은 그간 서정시나 참여시 대신에 주로 자기 목소리가 강한 시인에게 마당을 만들어줬다. 황동규 오세영 이수익이나 신경림 고은 같은 이가 목록에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당시 세계사 주관으로 이 시리즈를 기획했던 시인 최승호의 시적 경향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 시리즈의 보이지 않는 특징이라면 무엇보다 문단의 이해관계에 어느정도 자유럽게 시인을 선정한 점. ‘시단의 재야세력’란 말을 듣는 것도 그리 무리가 아니다.
강렬한 시 세계를 가진 작가 정신의 거처였던 만큼 아픔이 없지 않았다. 91년 ‘매음녀가 있는 밤의 시장’(15번)을 낸 이연주는 우울한 시풍을 증명이라도 하듯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95년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37번)를 내 평단의 주목을 받았던 진이정은 급성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시가 예전의 광휘를 잃고 있지만 ‘세계사 시인선’은 긴 호흡으로 시선을 멀리 둔다. 이경호 세계사 주간은 “치열한 시를 우대했던 초발심을 잃지 않기위해 7월 최승호를 시작으로 올해중에 이승훈 정진규 이하석 등 초창기 멤버들의 신작을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세계사는 3일 오후3시30분 시인선 100권 발간을 기념해 서울 삼성동 코엑스 태평양관에서 정현종 유안진 김정환 김정란 등 10여명의 시인이 참가하는 시 낭송회를 갖는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