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연주했던 합창곡을 모은 CD도 받았다. ‘오디오 CD’ 가 아니었다. MP3파일을 넣은 데이터 CD라 컴퓨터로 재생해야 한다는 거였다. 나이든 동문들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재학생들은 그런 동문들이 이상하다는 투였다. “아주 쉬워요!”
▼다양해지는 음악 유통▼
학창시절 함께 연주회장을 몰려다니며 친해졌던 벗들. 몇몇은 콘서트에 가본 지 오래라고 했다. “이제는 객석에 앉아 있기가 불안해. 잘못된 소리가 날까봐. 집에서 세계 일류 악단의 연주를 좋은 소리로 들을 수 있는데 왜 불편하게 연주회장에 가겠어?”
전통사회에서 음악은 마을축제와 함께 했다. 서구에서 시민사회가 성장하면서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고급음악’을 부르주아가 공유하게 됐을 때 그 체험의 지역단위는 대도시와 그 영향권이었다. 상인들은 ‘필하모니(和音愛)협회’를 도시마다 조직하고 ‘우리시(市)악단’의 체계적인 지원에 나섰다. 도시의 오페라극장에서는 ‘우리 지역 대표가수’ 들이 나름대로의 뛰어난 노래를 자랑했다.
축음기와 라디오가 널리 보급되면서 ‘우리동네 음악가’의 연주는 ‘우리세계 음악가’의 연주로 대치됐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연주에 청중들의 귀가 길들게 된 것이다. 예술의전당에서 지난주 공연한 성악가의 목소리는 모르지만, 보첼리의 목소리는 한소절만 들어도 안다. 하지만 음반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국경너머로 알릴 수 있는 연주가란 극히 선택된 소수일 뿐이다.
누가 ‘동네 예술가’들을 구해줄까? CD가 처음 등장했을 때, 그 반듯한 소리는 음악팬들을 예전보다 더 자기집 거실에 붙잡아둘 것으로 생각됐다. 그렇지만 CD 안에 구원이 잠재돼 있었는지도 모른다. 비닐 홈의 굴곡으로 음악을 저장한 아날로그 LP의 ‘물성’을 뛰어넘어, CD는 0과 1의 데이터로 음악을 환원시켰다. 데이터 압축기술이 발달해 나타난 MP3는 인터넷을 통한 음악의 유통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우리동네 악단’이 작은 돈을 들여 지구 반대편으로 연주를 보낼 수 있다.
최근 미국 교향악단 연맹의 총재인 찰스 올튼은 교향악단의 장래와 관련, 의미깊은 한마디를 던졌다. “앞으로 연주 녹음은 인터넷 유통을 위해 쓰이게 될 것이다. CD는 죽어가고 있다.” 일류 악단만 음악팬들에 다가가는 시대는 지났다. 앞으로는 누구나 평등하게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연주를 음악팬에게 공급할 수 있다. 연주력이 뛰어나고 이름난 음악가들은 돈을 받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음악가나 단체는 무료로 음악파일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일류 악단' 군림시대 흔들▼
그렇다면 지구촌 ‘대표음악가’들의 독점적 지위도 지금보다 하향조정되지 않을까. 음악팬들은 애향심에서라도 손쉽게 ‘클릭’ 몇 번으로 거실에 자기동네 악단의 연주를 불러올 수 있게 될 것이다. 듣도보도 못한 악단이 웹에 올린 베토벤 교향곡의 연주가 전세계 비평가의 찬사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음반을 전세계에 팔 수 있는’ 소수의 음악가와 그렇지 못한 다수 음악가의 지위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일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기자가 대학시절 다녔던 서클 얘기로 돌아가면, 십몇 년 전 교내 강당에서 열린 합창연주 실황을 MP3파일로 곧 인터넷에 공개한다는 계획이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