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지즘(Ageism)을 아십니까.
성차별, 흑백차별이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연령차별’을 안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에이지즘이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상대적으로 지위가 낮아지면서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
최근 한국소비자보호원이 65세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늙었다고 판매원이 불친절하게 대하거나 무시한다’고 응답한 G세대가 다섯명중 한명꼴이었다. 어디 쇼핑할 때 뿐이랴. G세대들은 또 어떨 때 에이지즘 때문에 가슴앓이를 할까.
▼"조산사 경험 활용했으면…"▼
▽구자형씨(75·여·서울 관악구 신림1동)〓20대부터 조산사로 일해왔다. 한동안 일에서 떠나있다 환갑넘어 다시 일을 하려고 했으나 도무지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나이가 많다는 단 한가지 이유 때문에. 나는 나이에 비해 건강한 편이다. 게다가 조산사는 나이가 많을수록 경험이 많아 산모를 편안하게 해줄 수 있다. 그런데도 병원을 찾아가면 “연세도 많으신데 이제는 집에서 쉬라”며 돌려보낸다.
일본은 그렇지 않다. 얼마전 일본에 갔더니 60, 70대 조산사들이 현장에서 씩씩하게 일하고 있었다.
집에서 노는 건 싫다. 서비스업을 하는 자식들을 도와주고 싶어도 “요즘엔 컴퓨터를 배워야 일을 할 수 있다”며 집에서 쉬라는 얘기만 한다. 나이들면 일도 못하나? 컴퓨터 가르쳐줄 생각부터 할 것이지….
▼"일상 대화서 소외돼 위축"▼
▽최충경씨(57·㈜경남스틸 대표이사)〓요사이는 아들뻘, 심지어 손주뻘 사람들이 사업장을 갖는 경우가 많아졌다. 우리도 코스닥 등록업체라 벤처기업인들을 자주보게 되는데 대화의 공통분모가 거의 없어진 걸 보면 ‘나이가 들었구나’하고 절감한다.
전에는 기업인들끼리 만나면 골프나 바둑이 주요 이야깃거리였다. 요즘은 스타크래프트같은 컴퓨터 오락에서부터 젊은 연예인들에 대한 품평까지 다양하다. 대화에서 소외됐다는 기분이 드는 순간 어쩐지 초라해지는 감정을 숨길 수 없다.
사업장이 마산인데 서울에 와서 가끔씩 전철을 타보면 학생들이 우루루 일어설 때 당혹감을 느낀다. 아직까진 ‘고맙다’는 느낌보다 ‘내가 그렇게 늙어보이나’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친절도 받는 이가 원하지 않을 땐 친절이 아니라는 것을 왜들 모를까.
▼"건설현장 젊은 사람만 원해"▼
▽박동희씨(69·경기 고양시 화정동)〓젊어서 전기공사일을 했다. 전기공사기사 자격증도 갖고 있다. 자식들은 “이제 일을 할 필요가 없으니 집에서 마음편히 쉬라”지만 아직까지 건강한데 자식들에게 신세지고 싶지 않다.
공사업체에 가서 면허증을 보여주며 일하고 싶다고 하면 “나이도 지긋하신데 거친 건설현장에 나가실 수 있겠어요”라는 이야기만 한다. 재작년에는 건설 분야에서 비교적 힘이 덜드는 감리 부문의 교육까지 받았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젊은 사람만을 원하는 업무환경에서 노인들이 할 일은 없다는 대답 뿐이었다.
아니, 시켜보지도 않고 일을 할수 있을지 없을지 어떻게 아나. 여자들은 남녀차별이 심하다고 하지만 극심한 나이차별이야말로 나이들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전문가 진단▼
에이지즘이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가장 앞서간다는 벤처기업의 메카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도 “주름살이 장래를 결정한다”는 말이 있을 만큼. 오라클사에서 해고당한 랜디 베이커부회장(55)은 나이와 관련된 차별대우에 대해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고 최근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지가 보도하기도 했다.
연세대 김동배교수(사회복지학)는 “노인들은 4고(四苦)로 표현되는 빈곤 질병 역할상실 고독 중 적어도 한가지는 갖고 있게 마련”이라며 “문제는 노인이 되면 으레 그러려니 하고 치부하는 고정관념 내지 편견, 즉 에이지즘”이라고 지적했다.
사회가 젊은이들의 취업문제나 일반가정의 빈곤문제는 심각하게 받아들이면서 노인취업이나 노인가정의 빈곤문제는 외면하는 의식이 바로 에이지즘 이라는 설명이다.
노인학 박사인 홍숙자씨(한국가족상담연구소 전문상담가)는 에이지즘에 대해 “서구사회에서 젊은이를 대우하고 생산성이 떨어진 노인을 차별하는 데서 나온 용어”라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사회는 ‘그’를 거절하게 되고,‘그’자신도 위축돼 사회와 유리 내지 은거하게 되는 과정을 겪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G세대가 위축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 김교수는 “여권운동을 통해 어느정도 남녀평등이 이뤄졌듯이 G세대도 스스로 권익운동을 벌여나가야 한다”며 사회의식 변화를 이끄는 것과 함께 법과 제도를 고쳐나가는데 힘을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진경기자>kjk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