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프로그램’은 13명의 러시아 학자와 한 명의 미국인 학자가 북한의 핵개발 문제를 둘러싸고 일어났거나 앞으로 예상되는 정치 외교 안보 경제적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1950년대 소련과의 협력으로 시작된 북한 핵 프로그램의 역사로부터 논의를 시작해 핵 프로그램의 정치 경제 군사적 및 국제적 배경을 차례로 검토한 후 한반도의 장래를 둘러싼 미래의 쟁점을 논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그 동안 우리 나라의 독자들이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러시아의 입장을 다양한 자료와 인터뷰에 기초해 비교적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는 점이다. 러시아 기고자들이 학자와 외교관 및 군인 등 다양한 배경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책에서 드러나는 러시아의 관점과 입장에 유용한 부분이 많다는 점을 새삼 인식하게 된다.
또 하나의 특징은 북한의 핵 개발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북한의 경제, 남북한 관계, 남북한과 4강 사이의 외교관계, 연해주를 둘러싼 한러 관계, 한반도의 통일과 비핵지대 등 한반도의 현재와 장래를 둘러싼 다양한 현안들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대(對)한반도 정책이 어떻게 전개될 것이며 그 과정에서 러시아와 남북한 및 러시아와 주변 강국들 사이에 어떠한 마찰이 발생할 수 있을 지를 예측하는 데 하나의 단서를 제공해준다.
러시아의 입장이 대변되어 있다는 점은 이 책의 장점이면서 단점이기도 한다. 특정 사안에서 러시아의 입장만 전달됨으로써 해당 분야에 지식이 없는 독자라면 문제의 실상을 오해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서 한국형 경수로를 제공함으로써 러시아가 북한에게 경수로를 제공하기로 한 1985년 협정이 폐기되고 러시아가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는 주장은 당시의 상황을 적절히 고려하지 않은 주관적인 입장이다. 따라서 독자들은 러시아 쪽으로 편중된 견해가 존재한다는 위험을 인식하면서, 이 책이 제공하는 다양한 정보와 관점을 조심스레 수용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의 아쉬운 점은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지만 기대했던 만큼의 깊이 있는 분석은 없다는 점이다. 14명의 저자가 19장으로 나누어 많은 문제를 논하는 데서 오는 지면의 한계는 있었겠지만, 전문가의 한 사람으로서 보다 심도있는 논의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책의 세부 내용 중에 관심을 끄는 몇 가지만 소개한다. 첫째, 북한의 핵개발 능력과 관련하여 똑같은 자료를 놓고 두 전문가의 견해가 상반된다. KGB 의장이던 크류이코프가 1990년 2월 22일 크렘린에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북한이 최초의 원폭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를 숨기기 위해 핵실험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스크바 현대국제관계연구소 부원장인 블라디미르 리는 이러한 평가가 과장된 것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현재 평양주재 러시아대사관 1등 서기관 알렉산더 제빈은 이 평가가 사실에 가깝다고 결론지었다. 제네바 기본 합의문에 의거해 영변 핵개발이 차단되었는 데도 북한이 핵물질과 장비를 밀수하려 했다는 구체적 증거를 제시한 것도 흥미롭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선임연구원인 나탈리 바즈하노바는 북한의 핵개발 동기를 소련 중국 프랑스의 핵무장 동기와 비교하면서 북한이 핵개발을 완전히 포기했다고는 볼 수 없다고 보았다.
결론적으로 ‘북한 핵 프로그램’은 미국과 일본 등 서방위주의 사고방식과 견해에 젖어있는 있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한반도의 안보와 장래를 보는 새로운 시각과 유용한 정보를 소개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박명서 정지웅 옮김. 378쪽,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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