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후의 다다이스트’ 시인 김구용(金丘庸·78)의 전집 6권이 솔 출판사에서 나왔다. 1권은 시집 ‘시(詩)’이고, 2, 3, 4권은 장시인 ‘구곡(九曲)’ ‘송(頌) 백팔(百八)’ ‘구거(九居)’를 묶었다. 5권은 1940년부터 1984년까지 쓴 ‘구용일기(丘庸日記)’, 6권은 산문집 ‘인연(因緣)’이다. 194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쉼 없이 뿜어낸 열정의 기록을 온전히 집대성한 것은 쓸쓸하게 잊혀진 치열한 문학정신에 대한 헌사다.
한국문학사에서 김구용이 차지하는 위상은 자신의 시 만큼이나 독특하다. 어릴적부터 경전과 고전을 섭렵한 뒤 등단한 그는 50년대 후반들어 본격적인 초현실주의적 시 세계를 보여줬다. 혹자는 ‘랭보와 말라르메와 발레리의 계보를 잇는 차가운 지성시의 계보를 독자적으로 이어갔다’는 평가를 내린다. 과도한 관념성이 없지 않지만 가난이나 분단 같은 핍진했던 삶에도 시선을 던지는 중용도 보여준다.
무엇보다 김구용 시의 접근을 막는 것은 특유의 난해성이다. 예컨대 ‘말씀은 처음에 섬으로 나타난다 / 끝난 곳에서 뻗어나는 나뭇가지가 / 다음 말씀을 찾기까지의 / 그 동안의 여정이었다’(‘거울을 보며’중) 같은. 박상륭의 구도소설 ‘죽음의 한 연구’에 필적할 만한 독해의 어려움에 대해 시인 김수영마저도 “난해의 장막”이라고 비판할 정도였다. 하지만 ‘안티포엠(反詩)’을 고집하던 고집불통’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자기세계를 고집했다. 서정시와 참여시의 편가르기에 끼여들 자리도, 비평적 동지도 거의 없었던 탓에 그는 쉽게 잊혀져 버렸다.
하지만 그의 시는 시간의 부식작용에도 불구하고 낡은 느낌을 주지 않는다. 자기 정신을 학대해가며 빚어낸 사유의 뼈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평론가 김홍근의 표현을 빌면 ‘현실과의 직대면에 입은 상처를 통해 흘러나온 선홍색 핏방울’이다. 또한 그의 장시에서 보여주는 서사성도 흥미롭다. 40쪽에 걸쳐진 ‘꿈의 이상’ 같은 작품은 살을 붙이면 중편소설 하나쯤은 너끈히 나올 만하다. 일찍이 김현은 “김구용은 산문을 써야 옳았을를지 모른다”고 말한 바 있다.
열정을 모두 다 소진해버린 듯 이제 노 시인은 앙상한 몸만 남아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 부인 구경옥(65)씨는 “보청기도 소용 없고 정신마저 혼미해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라고 전한다. 솔 출판사는 그의 살아생전, 시 대신 필생의 업으로 매달렸던 ‘삼국지’ ‘수호전’ ‘옥루몽’ ‘열국지(列國志)’ 번역서 37권도 출간할 계획이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