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북스]이동현/'벤처 마케팅'

  • 입력 2000년 6월 2일 19시 04분


IMF 사태 이후 벤처기업은 재벌을 대신해 한국 경제를 이끌 새로운 희망으로 급부상했다. 최근 금융 위기와 현대 사태, 코스닥 시장 침체 등으로 많은 벤처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위기를 극복한 벤처기업은 더욱 강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책은 벤처기업이 당면한 위기의 본질을 설명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책이다.

첨단 기술 시장은 고객의 구매 특성에 따라 크게 초기 시장, 주류 시장, 말기 시장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중에서 첨단 기술에 호의적인 고객들로 구성된 초기 시장과 지극히 실용적이고 보수적인 고객들로 구성된 주류 시장 사이에는 벤처기업이 건너뛰기 어려운 거대한 간극, 즉 캐즘(chasm)이 존재한다. 많은 벤처기업들은 이러한 캐즘의 존재를 모르거나 캐즘에서 빠져 나오지 못해 실패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주장이다.

신흥 벤처기업들은 최신 기술과 뛰어난 성능의 제품으로 첨단 기술에 호의적인 소수의 고객들을 만족시킬 수 있다. 실제 초기 1, 2년 동안 매출액이 늘어나고 투자자도 생기기 때문에 경영자들은 사업에 성공했다는 환상에 빠지게 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주류 시장의 고객들은 초기 시장의 고객들과 완전히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

그들은 첨단 제품보다 시장의 표준을 장악한 제품, 제품가격보다 유지비용, 뛰어난 성능보다 애프터서비스의 질을 선호하는 집단이다. 결국 캐즘을 뛰어 넘는다는 것은 제품 중심의 우호적인 환경에서 시장 중심의 낯선 환경으로, 혹은 마음 맞는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친근한 고객 속에서 본질적으로 냉담한 고객 속으로 옮겨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주류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사업 초기와 전혀 다른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저자인 조프리 무어는 첨단기술 기업 전문가로 캐즘을 벗어날 수 있는 몇가지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우선 주류 시장에 교두보를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이를 위해 시장 전체를 공략하기보다는 목표 세분 시장을 집중 공략함으로써 주류 시장에서 성공 사례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초기 시장에서 쌓은 명성과 사례가 도움은 되지만 주류 시장의 고객들을 설득하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또한 주류 시장의 고객들은 단순히 하나의 제품보다는 제품과 관련된 부가 서비스, 예컨대 설치, 추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시스템 통합, 교육 및 지원 등을 모두 포함한 완전 제품(whole product)을 원한다. 따라서 기업은 자신이 직접 책임질 부분 외에도 협력사나 제휴선과 연합해 고객에게 완전 제품을 제공해야 한다.

97년에 번역 출간됐지만 벤처에 관련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시의성있는 책이다. 특히 1장의 '첨단기술 벤처기업에 대한 가상 시나리오'는 현재 우리 나라 상황과 너무나 흡사해 놀라울 뿐이다.

이동현(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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