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삼윤의 문명과 디자인]차크몰-인신공희-집단무의식

  • 입력 2000년 6월 12일 19시 37분


희생 제물을 고르기 위해 경기를 벌였던 구기경기장
희생 제물을 고르기 위해 경기를 벌였던 구기경기장
‘태양을 구출하라’. 할리우드 영화의 제목이 아니다. 10∼16세기 멕시코 고원을 지배했던 아즈텍(Aztec)인들이 자나깨나 생각했던 삶의 최대 과제였다. 그들은 머리 위에서 비치는 태양이 창세 이래 다섯 번째 것으로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이미 지쳐있는 태양에 인간의 피와 심장을 바치지 않으면 빛을 잃어 세상은 종말을 맞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이 그린 태양이 항상 지쳐 있고, 또 ‘제발 인간의 피를 다오’라는 시늉으로 혀를 입 밖으로 내밀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멕시코시티의 인류학박물관에서 둘러 보니 아즈텍인만이 세상의 종말을 걱정해 인간의 피와 심장을 태양에게 바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 중남미의 고대문명 모두가 그랬다. 바다 하나를 격하고 있는데도 구대륙과는 어쩌면 이렇게 다를 수가 있단 말인가. 구대륙에선 그것을 청산한 지가 언젠데. 미개하고 야만스러운 종족들이라니…. 그러나 이런 생각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그들은 시시한 신변잡사나 개인적인 이익이 아니라 적어도 우주의 안위에 대해 걱정하고 그를 위해 스스로 희생 제물이 될 각오까지 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그들이 자기 몫만 챙기려 한 오늘의 우리의 삶의 흔적들을 보게된다면 무어라 할까 생각하니 그들을 미개하다고만 말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그 피의 문화를 한번 제대로 살펴보자’는 생각으로 유카탄 반도에 있는 치첸이차(Chichen Itza)로 달려갔다. 인신공희(人身供犧·사람을 희생으로 바치는 제의) 문화가 절정을 이루었던 마야 후기(550∼900)시대의 문명유적인 그곳에는 아직도 그런 물증이 많이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먼저 교통의 요지이자 주도(州都)인 메리다에 닿았다. 이곳에는 의외로 볼거리가 많고 물가도 싸 주머니가 가벼운 나 같은 여행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다.

메리다에서 동쪽으로 120km 거리에 있는 치첸이차로 가는 길은 정글 속으로 나 있었다. 이미 하늘에서도 보았거니와 멕시코 남부의 유카탄반도는 온통 녹색의 정글 지대다. 수목은 갑자기 퍼붓는 소나기에도 잘 자라지만 인간의 먹이가 되는 곡물은 늘 물 부족을 느끼는 곳이 바로 이 유카탄이다. 그것은 빗물이 땅 위에 오래 머물지 못 하고 금방 지하로 스며들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농경문화권에서 물이 부족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치첸이차라면서 버스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정글 속이었지만 치첸이차 유적은 아주 넓었다. 한가운데에는 치첸이차의 상징물이자 마야의 역법을 건축적으로 표현했다고 하는 9층 높이의 잘 생긴 피라미드 ‘쿠쿨칸’이 버티고 있다. 그 앞으로는 넓은 광장과 ‘工’자 형태의 구기장(球技場), 재규어(jaguar)상이 새겨져 있는 재규어신전, 용출하는 샘인 성지(聖池) 세노테, ‘차크몰(chacmol, 비의 신이자 희생 제물의 사자 조각)’이란 이름의 돌 조각품이 있는 ‘전사(戰士)의 신전’ 등이 있었다. 또 뒤쪽으로는 둥근 천장구조를 하고 있는 천문대와 수도원 등이 있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앉아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누워 있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인물상 차크몰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얼굴을 옆으로 돌린 채 손으로는 배꼽 위에 올려진 접시를 받치고 있어 마치 ‘어서 여기에다 뜨거운 심장을 올려 다오’라고 외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영국의 조각가 헨리 무어는 그 어느 곳에서도 태어난 적이 없는 치첸이차 특유의 저 차크몰을 파리의 트로카도박물관에서 처음 본 순간 전율 같은 것을 느낀 유명한 ‘와상’이란 작품을 남겼다고 한다. 그만큼 차크몰은 충격적인 작품이다. 어떻게 저런 비현실적인 자세를 생각할 수 있었단 말인가. 마야인들은 아즈텍인들과는 달리 그들이 믿는 최고의 신에게 피를 비쳤다. 하지만 혀를 입 밖으로 내미는 소극적인 방식이 아니라 ‘피를, 뜨거운 피를’ 하면서 적극적으로 의사표시를 했다. 그들의 피에 대한 갈구는 그렇게 절실했기에 차크몰의 접시 위에 산 사람의 심장을 올려놓기 위해 가장 힘 센 자의 것을 구했다.

내가 감탄한 것은 그 ‘가장 힘센 자’를 선발하는 방법이었다. 물론 이곳에는 그걸 말해주는 유적도 있었다. 치첸이차 입구에 있는 ‘工’자 형태의 긴 경기장이 그것이었다. 바닥에는 잔디가 깔려 있고 양쪽으로는 관중석이 그대로 있었다. 양쪽 벽면 한가운데에 6m 높이로 달려 있는 링 형태의 작은 골대가 있고 그 하단에 부조가 새겨져 있었다. 선수들은 7명이 한 팀을 이뤄 각자 작은 고무공을 이리저리 패스하면서 골대로 돌진했다.

희생 제물은 이 경기에서 이긴팀의 최우수 선수로 삼았다. 그러므로 경기는 단순한 놀이일 수는 없었다. 희생과 죽음이 따르는 중요한 집단의식이었다. 비의 신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경기를 치르고 거기서 패자가 아닌 승자를 희생 제물로 선택했다는 점에서, 다시 말해서 강요보다는 자발성을 강조하였다는 점에서 피를 부르는 제식치고는 그래도 덜 비인간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인신공희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심한 가뭄이 들거나 흉년이 들면 처녀나 어린아이를 산채로 용출하는 샘 속으로 던져 넣었다. 비의 차크가 그곳에 산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현장이 쿠쿨칸 피라미드 정면 숲 속에 자리한 직경 66m, 깊이 20m의 ‘세노테’란 이름의 못이다. 여기서 19세기 후반 수중조사 결과 18개월에서 12세까지의 아이 유골이 21구, 여자가 8구, 성인남자 13구와 차크 신상, 그리고 수많은 금은 장신구가 발굴돼 그 옛날 처참했던 인신공희의 피비린내 나는 장면들을 증명해 줬다.

아무튼 마야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구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도 약자가 아니라 강자를 바쳤다. 그런 점에서 그들의 사고의 틀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내 삶이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는 것이라면 과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것도 집단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그런데도 마야인들은 여기에 대해 조직적인 저항이나 의문을 제기하지 않은 듯 오랫동안 피의 의식을 계속했다.

아마도 그들에게는 희생을 강요하는 문화, 정신분석학자 칼 융의 말을 빌린다면 ‘희생을 강요하는 집단무의식’ 같은 것이 존재했던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런 일이 오랫동안 집단적으로 치러질 수 있겠는가. 하긴 그들보다도 훨씬 진화됐다고 믿는 최첨단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도 ‘개발은 선(善)’이라는 집단무의식에 빠져 대(大)를 위한답시고 힘없는 약자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국토와 환경을 마구 망가뜨리고 있으니 그들을 탓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 같은 어리석음에서 인간을 구할 수 있는 ‘완벽한 구원’은 과연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정녕 이것이 인간의 조건이란 말인가. 치첸이차의 인신공희 유적은 그걸 내게 묻고 있었다.

권삼윤(문명비평가)tumi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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