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전국광―차학경]죽어서도 빛나는 두 요절작가의 예술혼

  • 입력 2000년 6월 14일 19시 33분


<<신은 재능이 많은 사람을 일찍 자기 곁으로 데려간다. 치열한 장인 정신으로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냈으나 31세와 45세를 일기로 신의 곁으로 가버린 조각가 전국광과 비디오 아티스트 차학경. 그들을 추모하고 작품 세계를 재조명하는 전시회가 나란히 열리고 있다.>>

▼전국광…한국 주지주의의 선구자▼

전국광. 적(積)과 매스(mass) 시리즈로 한국 현대조각의 주지주의적 경향을 창시한 선각자. 81년 국전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눈썰미 높기로 유명했던 호암 이병철회장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던 조각가였다.

4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그의 10주기 추모전 ‘돌에 핀 석화(石花)’가 15일부터 7월 9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다. 출렁거리는 수면이나 책 또는 시루떡을 쌓아 놓은 모습을 연상시키는 일련의 적 시리즈, 잘 정돈된 모판이나 바둑판을 떠올리게 하는 매스 시리즈 조각 및 드로잉 작품 90여점이 선보인다. 적 보다는 매스의 내면에 좀 더 비중을 둔 것이 이번 전시의 특징.

해방동이로 홍익대 조소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82년 영남대 교수로 부임했으나 교수와 작가를 양립할 수 없다고 판단, 스스로 그만둔 뒤 경기도 마석의 작업실 묻혀 살았다. 술 잘먹고, 글 잘 쓰고, 노래 잘하며, 작은 일에도 감동 잘하는 그야말로 다재다능한 예술가였다고 주위사람들은 회고한다. 한대수 송창식 등 포크 가수들과도 남다른 교분을 가졌다.

1990년 여름 가족과 양평으로 뱃놀이를 간 그는 술에 취한 채 가족이 있는 강변을 향해 물에 뛰어들었다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전시회를 기획했고 그를 기리는 책 ‘씩 웃고 술 한잔-전국광의 조각과 생애’도 낸 부인 양화선(조각가)은 “남편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선구자적 작가로서 그가 잊혀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추모전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오명철기자>oscar@donga.com

▼차학경…死後 휘트니미술관 두번 전시회▼

차학경. 미국의 휘트니미술관이 세상을 떠난 그를 위해 두번이나 전시회를 열었던 재미교포 여류 비디오 아티스트.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코리아메리카코리아’전 한귀퉁이에는 80년 그가 제작한 ‘이그자일레(프랑스어로 ‘방랑객’이라는 뜻)’가 전시되고 있다. ‘There. has begun. already. there. room. rooms, as is….’ 등 영어가 서툰 화자의 말과 글 위로 영상화면이 투사돼 겹쳐지는 25분짜리 비디오 작품.

차학경은 51년 부산에서 태어나 61년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했다. 이민을 ‘언어적 추방’으로 경험한 그는 고등학교 시절 제3의 외국어, 즉 프랑스어에 빠져들었다. 아트선재센터의 이정우 큐레이터는 “차학경이 어린시절 서툰 영어에 대한 콤플렉스를 작품에 표현하고 불어 제목을 자주 사용하는 것은 이같은 자의식의 표현”이라고 해석했다.

차학경은 이후 UC버클리에 진학해 75년 비교문학으로, 78년에는 미술실기로 각각 석사학위를 받았다. 80년 뉴욕으로 이주해 ‘딕테’와 ‘아파라투스’ 등 두권의 책을 냈다. 이중 우리말로도 번역된 ‘딕테(받아쓰기)’는 버클리대에서 소수민족 관련 강의 교재로 쓰이고 있다. 그녀는 82년 5월 남자친구 리처드 반즈와 결혼했으나 그해 11월 31세의 나이에 뉴욕에서 살해되는 비운을 맞는다.

휘트니미술관은 93년과 95년 두차례 차학경 회고전을 열어 그녀의 예술세계를 재평가했고 버클리대는 학교박물관에 그녀의 모든 유품과 작품을 보관하고 있다.

<송평인기자>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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