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후각, 기억과 욕망의 감각"

  • 입력 2000년 6월 16일 18시 50분


▼'냄새 그 은밀한 유혹' 피터 브론 외 지음/까치 펴냄▼

“나는 냄새를 맡는다. 고로 존재한다(olfacio ergo sum).”

냄새나 향기가 없으면 이 세상이 얼마나 무료할지, 이 책은 잘 말해준다.

냄새에 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이 책은 곳곳에서 예상치 못한 아리송한 질문을 던지고 그것에 대해 유쾌한 해답을 펼쳐 보인다.

아이들은 향수를 싫어하는데 왜 그럴까? 어머니가 향수를 사용하는 것은 종종 어머니의 외출을 의미하며 아이들에게 그것은 홀로 남아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 아이들이 향수를 싫어할 수밖에.

인간이 구분할 수 있는 냄새는 약 40만가지. 그러나 냄새에 관한 연구는 별로 없다. 그래서인지 인간의 언어엔 냄새를 묘사하는 어휘가 유독 부족하다. 동서양이 마찬가지다. 저자는 그 원인의 일단을 서양의 문화사에서 찾는다. 플라톤은 향수를 우유부단하고 육체적 쾌락을 즐기는 사람들이나 찾는 것이라며 배척했다. 냄새를 멀리해야 할 욕망 혹은 악의 상징처럼 여겼던 것이다. 유럽에서 의사들이 청진기를 개발한 것도 환자들의 냄새를 멀리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한다.

냄새의 ‘복권’이 이뤄진 것은 18세기. 당시 낭만주의 예술가들은 스스로의 감정을 표출하기 위해 냄새(악취도 포함해서)의 중요성을 외치기 시작했다.

이제, “냄새는 기억과 욕망의 감각이다.”

냄새를 맡는 후각은 감성적인 우뇌와 연결되어 있다. 냄새는 기본적으로 감성적이고 그래서 신비롭고 은밀하다. 냄새는 인간의 성, 동기 부여, 기억 등에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독가스유출과 같이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상황이 닥치면 그것을 경고하는 기능도 한다. 사람은 잠들어 있을 때도 냄새를 맡는다. 그 때의 냄새는 심장 박동과 두뇌 활동에 영향을 끼친다. 박하 냄새를 풍기면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뇌파 활동이 증가한다. 냄새는 또 사람에게 오랜 기억으로 남는다. 그리고 어떤 기억을 들추어낸다. 분필 냄새는 학창시절의 기억을, 아카시아 향은 사랑의 추억을 이끌어낼 수 있다. 유쾌한 냄새는 유쾌한 기억을 유발한다는 통계 결과도 내놓는다.

냄새는 실생활에도 도움이 된다. 영국 런던 히스로공항은 청사에 솔잎향을 뿌리고 있다. 어려서 소나무 숲 속에서 길을 잃었던 사람이 아니라면 솔잎 냄새를 맡고 안락함을 느낀다. 바다 냄새를 맡으면 얼굴 근육의 긴장도가 20% 가량 감소한다는 주장도 소개한다.

냄새는 색깔과도 관계가 있다. 만일 체리 쥬스에 오렌지 색깔을 넣으면 오렌지 냄새로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그럼 향수는 왜 대개 노란색 계통일까?

이 책의 저자 3인은 네덜란드의 심리학자 생물학자들. 엄밀한 과학적 분석보다는 통계 자료에 의존한 감이 짙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인철 울산대 의대교수 옮김. 287쪽, 9000원.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냄새 상식 백과▼

△코는 정치를 하지 않는다. 복잡한 관료주의를 견디지 못한다.

△색깔이 있는 것의 냄새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

△여성이 남성보다 더 냄새를 잘 맡는다.

△좋은 향수는 세가지 냄새를 연달아 낸다.

△후각 이상(異常)은 미각 이상을 수반한다.

△식사 도중 담배를 피우면 음식물의 냄새를 잘 맡을 수 없다.

△빨래하지 않은 엄마 옷을 옆에 두면 아이들이 덜 운다.

△아기들이 모유를 더 좋아하는 것은 모유를 마실 때 엄마 냄새를 더 잘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서 냄새가 나는지 알려면 공기를 짧게 들이키고 고개를 좌우로 돌려라.

△콧수염을 기르는 사람은 유쾌하거나 불쾌한 냄새를 더 오랫동안 느낄 수 있다.

△냄새는 감정적 연상과 기억을 상기시키므로 병원에선 환자 치료를 위해 여러 냄새를 인공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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