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통일을 이룬 독일 총리들/"역사는 만드는 것"

  • 입력 2000년 6월 16일 18시 50분


▼'통일을 이룬 독일 총리들' 귀도 크놉 지음/안병억 옮김/한울 펴냄▼

2000년. 한국의 통일시계는 어디에 맞춰져 있는가.

역사는 때로 뜻하지 않은 시공간에서 반복된다. 사실(史實)과 현실 사이의 유사성만을 보고 미래를 점치려 드는 것은 역사신비주의의 미망이요, 인과(因果)를 냉철히 따져 오늘의 배움으로 삼는 것은 지혜가 될 터.

1969년. 독일연방공화국 최초의 사민당출신 총리 빌리 브란트가 취임한다. 취임사에서 그는 동독을 처음 ‘국가’라는 실체로 인정한다.

3년 뒤 동서독 기본조약이 서명된다. 양측은 ‘관계정상화를 위해 실천적이고 인도주의적인 문제를 논의하며, 학문과 경제 기술 문화 스포츠 환경보호 및 몇몇 분야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협약이 있을 것이다’라고 못박는다. 이산가족 상봉과 경제지원이 뒤따른다. 양 독일이 통일의 결실을 맺기까지는 18년이 남아있었다.

1990년, 모두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일을 역사의 장 위에 이루어낸 독일통일. 저자는 ‘통일의 문은 짧은 시간 동안만 열려 있었다’고 단정한다. 고르바초프가 한해만 일찍 실각했다면 통일의 과정은 없었거나 훨씬 어렵게 진행됐으리라는 것. 그렇다면 헬무트 콜은 천재일우의 순간을 날쌔게 포착한 ‘운좋은 사나이’에 불과할까. 아니, 저자의 시각은 철저하게 ‘준비된 통일’이라는 시각에서 정부수립 이후의 독일연방공화국사(史)를 훑어내려간다.

초대총리 아데나워는 철저하게 친서방정책을 유지했고 ‘미국의 신뢰를 잃는 것은 끔찍한 일’이라고 여겼다.

그는 동구권을 외면하고 소련이 제시한 중립국가 통일계획을 거부했다. 그가 얻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폐허의 조국을 일으켜 성공적인 서방의 일원으로 데뷔시켰으며 국제사회에서 필요한 영향력을 확보한 것.

좌파로서는 처음으로 정권을 인수한 브란트는 동구권과의 긴장완화와 화해정책을 추구했다. 그는 동구권으로 문을 열어젖힘으로써 서독을 ‘서유럽 국가에서 유럽국가로’ 변화시켰다. 아데나워와 브란트의 정책은 상반된 듯 하지만 각기 시대가 요구하는 최적의 선택이었다.

통일을 성사시킨 콜은? ‘서독이 서유럽과 동유럽에서 얻어낸 신뢰의 과일을 그는 단 한번 있는 행운의 순간에 이용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흐루시초프 앞에서 ‘붉은 군대도 우리 민족에게 잔혹한 행위를 하지 않았느냐’고 맞선 아데나워의 용기와, 폴란드의 유태인 희생자 묘역에서 무릎을 꿇은 브란트의 진솔함, 결단의 순간에 발휘된 콜의 추진력과 과단성이 3위1체로 작용, 위대한 역사의 결과를 이끌어냈다는 것.

‘독일연방공화국은 총리 복이 있었으며 국민 모두도 나라 복이 있었다’는 저자의 결론은 일종의 질투마저도 느끼게 한다. 우리도 훗날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 “경제성장을 통해 국가의 기반을 다진 지도자, 민주화를 진전시켜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위치를 공고하게 한 지도자, 분단 쌍방간 진솔한 이해의 통로를 연 지도자, 결단의 순간에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한 지도자…, 모두가 통일의 유공자다” 라고. 안병억 옮김 360쪽 14,000원.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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