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출판통신/보스턴에서]"독서는 나만을 위한것"

  • 입력 2000년 6월 16일 18시 50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그리고 왜?' 해롤드 블룸 지음/사이먼 앤 슈스터 펴냄▼

미국 문학계에서 해롤드 블룸처럼 단호하게 자신의 문학관을 일관되게 논쟁적으로 써온 인물도 드물 것이다. 2, 3년마다 발간되는 그의 책은 매번 화제작이다. 지금 미국의 대학가 서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 책은 지난달 출간된 그의 ‘어떻게 읽을 것인가 그리고 왜?(How to Read and Why?)’라는 새책이다.

시각적으로는 TV, 영화, 컴퓨터, 버츄얼 리얼리티 등이, 청각적으로는 랩, 락, MTV 등이 원하는 사람에는 얼마든지 자극을 주는 세상에서 문학의 지위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은 이미 구문이다. 40년을 넘게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쳐온, 지금은 70이 다 된 이 미국의 대표적 문학비평가가, 혹시 문학이, 책이, 독서행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그런 걱정을 하며 쓴 것이 이 책이다.

1994년의 화제작 ‘서양의 정전’에서 그는 ‘정치적 공정성’을 외치는 좌파들, 특히 급진적 페미니스트들과 푸코주의자들로 이루어진 ‘분노학파’가 셰익스피어를 중심으로한 서양의 고급문학을 캠퍼스에서 몰아내고 있으며 문학연구가 아니라 문학살육을 행하고 있다고 격렬히 비난한 있다. 그 뒤 98년에는 ‘셰익스피어: 인간의 발명’에서 왜 셰익스피어가 그토록 위대한가를 역설한 바 있는 그의 단호한 보수성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번 저서에서도 그의 순문학 애호는 뜨뜨미지근한 법이 없다.

그는 무엇보다 명쾌하다. 왜 읽는가.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기 위해서이다. 셰익스피어나 체호프의 필치가 없었더라면 미처 발견해내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삶의 내밀한 영역들을 우리 자신 속에서 발견하기 위해 우리는 시, 소설, 희곡 등을 읽는다.

그는 이기적 독서를 권한다. 이데올로기적 접근이나 사회윤리적 맥락을 다 버리고 오로지 너 자신만을 위해 읽어라. 문학은 우리가 인간으로서의 본연의 모습을 찾아내는 것이므로, 다른 가치나 목적을 버리고 문학 작품속의 인물과 상황에, 그리고 작가의 목소리에 주의를 집중하라.

영화나 TV, 버츄얼 리얼리티가 줄 수 없는 것을 책이, 문학이 주는 것이 있는가? 그렇다, 그것은 영상매체가 주는 일시적 감각의 자극과 평면적인 반응이 아니라 홀로 있는 개인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통찰의 기회와 그에 따른 지혜를 준다. 또 이야기의 드러난 모양과 속에 숨겨진 뜻이 다른 아이러니는 시각적 매체가 표현하기 어려운 문학 고유의 것이다.

노비평가가 문학의 수호천사로 나서서 문학의 장래를 우려하고 대중 독자들의 독서 지도에 나서는 풍경은 우리를 다소 처연하게 만든다. 그러나 블룸이, ‘돈키호테’는 최초의 소설이자 여전히 최고의 소설이다, 라고 말할 때, 그리고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인물 중 최고의 위대한 개성은 ‘헨리 4세’의 팔스타프다, 라고 서슴없이 말할 때, 우리는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완고한 노교수에게 경의를 표하게 된다.

이영준(하버드대 동아시아학과 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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