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의원-동네약국의 변화]서비스質 개선 비상

  • 입력 2000년 6월 26일 19시 34분


의료계의 집단폐업에 참여했던 서울 서대문구 M의원의 H원장(40·가정의학과). 25일 폐업철회가 결정된 뒤 가슴이 꽉 막힌 기분이다. “의약분업이 시작된다는데 막막하기만 하다”고 말하는 그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동네의원들에겐 여전히 희망이 없다”고 말한다.

5월 동료약사 3명이 약국을 합쳐 서울 송파구 송파제일약국을 연 약사 최인순씨(38)도 의약분업 준비에 마음이 바쁘다. 25평 규모의 약국에 컴퓨터 처방전 프로그램을 갖추는 등 분업에 대비하는데 2000만원 이상 투자했다. 전산직원도 1명 고용했다.

7월1일 의약분업 실시와 함께 가장 피부에 와닿는 변화가 찾아올 곳은 동네병원과 동네약국. 경쟁의 원칙이 바뀌면서 ‘기다렸다’는 준비파가 있는가 하면 막막함을 호소하는 ‘속수무책파’도 적지 않다.

약국의 경우 ‘약사들의 대이동’이 이미 한차례 끝났다. 골목안의 약국들이 사람들의 이동이 잦은 길거리, 특히 병의원 근처로 옮겼고 동업이 늘었다.

아예 약국문을 닫고 고용약사로 신분을 바꾼 약사도 많다. 2월말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서 운영하던 5평 규모의 약국을 정리하고 대형약국에 취업한 이승미약사(35)는 “그대로는 유지가 안될 것같아 아예 큰 약국에 취업했다”고 말한다.

폐업을 고려하는 약사들도 적지 않다.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L씨(61)는 요즘 있는 약만 팔고 새 약을 들여놓지 않는다.

대한약사회 신현창(申鉉昌)사무총장은 “2만6000여 회원중 올해 들어 10% 정도가 약사회비를 안냈는데 이들 대부분은 7월이 지난 뒤 폐업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잠정 탈퇴자들”이라 말한다. 특히 조제에서 얻는 수익비중이 컸던 약국일수록 상실감이 크다는 것.

동네약국들이 과거 편리성과 인접성, 조제 실력에 승부를 걸었다면 의약분업 실시 이후는 서비스가 경쟁력이 될 전망이다. 의사의 처방전을 얼마나 빨리 소화해 정확한 약을 주고 약에 대한 설명을 잘 해주느냐가 관건이 된다는 얘기다.

분업을 반대해온 의사들은 이제 준비에 나설 수밖에 없고 그나마 준비를 해온 의사들도 의료서비스의 전문화와 다각화를 통해 살아남으려는 파와 구조조정을 통해 생존을 모색하는 파로 갈린다.

서울 은평구 응암동 서울 정형외과 임영 원장(45)은 한달전 물리치료실을 넓혔다. 의약분업 이후 어찌될지 알 수는 없지만 환자가 줄 것같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인천의 K의원(가정의학과)의 경우 2명이던 간호사를 1명으로 줄이는 긴축책을 펴고 있다. K원장은 “소규모 의원들은 분업 실시로 약 35%의 수입 감소가 불가피하다. 폐업이 속출하는 위기 상황이 도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진료과목중에는 의약품 비중이 큰 일반 내과 의원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이란 전망. 광주에서 내과를 운영하는 홍경표원장은 “과거 1회 진료와 처방에 한달분 약을 주던 당뇨병 환자의 경우 앞으로는 월 1회 진찰료와 원외처방전료 밖에 기대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그룹병원과 약국 유치를 통해 생존을 모색하는 움직임도 눈에 띈다. 한 빌딩안에 여러 진료과목이 모여 2,3,4층에 병원, 1층에 약국을 유치하고 비보험치료 항목을 개발하는 것이다.

한편 병의원마다 약을 포장하고 복약지도를 담당하던 간호 보조인력의 경우 대량 감원사태를 피할 수 없을 전망. 전국의 병의원 1만8000개소에서 1명씩만 줄인다 해도 2만명의 간호보조인력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

변화의 물결에 대처하는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이제 의사와 약사가 협력해야 함께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로 진입하는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서영아기자>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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