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페리 ‘어린 왕자’의 한구절. ‘까다롭고 연약하며 까탈스러운’ 장미는 떠나간 어린 왕자를 어떤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었을까.
29일은 영원한 아이였고 방랑자였던 ‘야간비행’과 ‘인간의 대지’의 작가 생텍쥐페리의 탄생 100주년. 때맞춰 4월 프랑스에서는 부인 콩쉬엘로 드 생텍쥐페리의 회고록 ‘장미의 기억’이 출간됐다. 지은이가 1979년 눈을 감을 때 까지 감추어두었던 원고를 상속자가 공개한 것으로 국내에서도 출판사 창해가 최근 이 책을 번역 출간했다.
책은 사랑의 향훈과 살갗을 꿰뚫는 고통으로 수놓아진 둘의 결혼생활을 뜨거운 열정의 언어로 기록한다. 독자는 때로 절제를 모르는 생텍쥐페리의 기질, 삶과 죽음의 모서리에서 줄타기하듯 살아간 위태로운 삶, 여성편력에 안타까워하면서도 일말의 알수없는 안도감마저 갖게 된다. ‘그는 정말로 어린 왕자였구나. 작품과 다른 삶을 살았던 속물근성의 부르조아가 아니었구나!’라고.
첫 장은 두 사람의 첫만남에서 시작된다. 1930년. 작가는 아르헨티나 항공우편회사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책임자. 그를 매혹시킨 이는 전 남편의 기억을 채 떨치지 못한 상중(喪中)의 여인. 거대한 몸집에 어눌한 말투, 정열의 화신이었던 생텍쥐페리는 즉흥적 영감에 따라 행동하면서 때로 상대의 마음을 다치게 한다. 여인은 고민에 싸인다. ‘어쩌다가 나보다 훨씬 높은 하늘을 나는 사나운 새와의 결합을 승낙하고 만 걸까?’
결혼 초기는 목숨을 건 야간비행에 마음을 졸이던 시간으로 흘러간다. 생텍쥐페리는 대작가의 반열에 들게 되지만, 둘만의 시간은 집필과 대외활동의 바쁜 일정으로, 아내에게 보내던 미소는 젊은 여성 숭배가들에게 보내는 미소로 변화해간다. 여인은 ‘나를 그의 아내로 만들어 주시면서 하느님이 허락하신 맑게 갠 날은 내게 너무나 부족했다’고 되뇌인다.
결혼생활의 만년은 작가의 외도로 얼룩졌던 아픈 기억의 날들. 결별과 재결합이 거듭되지만 둘은 거듭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면서도 서로의 곁을 떠돈다. 화자는 끝내 ‘어눌함, 시인으로서의 면모, 다치기 쉬운 영혼을 감추고 있던 거인 같은 그를 사랑했다.’라고 고백한다. 책의 끝머리는 전선으로 향하는 작가에 대한 열렬한 사모의 말로 장식된다.
‘불멸에는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평소에 그를 알던 사람들의 기억속에 존재한다는 작은 불멸, 또하나는 그를 모르던 사람의 기억에까지 길이 살아남는 큰 불멸…’이라는 밀란 쿤데라의 말을 빌면, 이 책은 작가의 영혼을 속속들이 들춰보았던 인물이 남긴 작은 불멸의 기록이자, 작가의 큰 불멸을 완성시키는 의미깊은 기록이기도 하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