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1년 10대 소년이었던 마르코 폴로는 아버지와 삼촌을 따라 몽골제국으로 향하는 기나긴 여행길을 떠났다. 그렇게 시작된 만리이역에서의 생활은 1295년까지 계속되었다. 그 동안 마르코 폴로는 쿠빌라이 칸이 통치하는 원나라에서 그의 신하로 17년 동안 머물렀다고 한다. 1290년 이란지역의 일 칸국으로 시집가는 공주의 안내자로 중국을 떠난 그가 콘스탄티노플을 거쳐 고향 베니스로 돌아온 때는 1295년. 육로를 사용했던 출국길과 달리 해상의 항로를 이용한 귀국여정이었다.
동서양을 넘나든 많은 무명의 인간들과 달리, 그가 불후의 명성을 남기고 역사에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었던 이유는 여행 기록을 남겼기 때문이다. 1298년 베니스-제노아 전쟁에서 포로가 되어 제노아 감옥에 갇힌 그는 모험소설 작가 루스티켈로에게 동방에서 보고 들은 자신의 견문을 구술하였다. 우리에게 ‘동방견문록’이라는 명칭으로 친숙한 ‘세계의 서술’이 바로 그 기록이다. 책의 원본은 사라졌지만 전세계에 120여 종의 사본이 남아 있다.
한때 서양에서 성경 다음가는 베스트셀러였던 마르코 폴로의 ‘견문록’은 많은 사람들, 그리고 다양한 장르의 예술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리하여 중국과 동방에 대한 서구인들의 관심과 상상을 끊임없이 불러 일으켰다. 예컨대, 신대륙을 발견한 컬럼부스가 미지의 세계를 향한 모험에 투신한 동기도 다름아닌 이 책의 영향이었다. 그는 인도로 향했던 것이 아니라 마르코 폴로가 전해준 동양의 부유한 나라 몽골제국을 찾아 떠났던 것이다.
드디어 ‘동방견문록’의 한글 번역본이 출간됐다. 감히 ‘드디어’라는 표현을 쓴 까닭은 그 동안 국내에서 출간된 역서들은 ‘포켓판’이나 ‘대중판’ 또는 일본어 번역의 중역본이며 비전문가에 의한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사계절판 ‘동방견문록’은 다양한 사본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완역결정본’이다. 또한 중앙아시아의 역사를 전공한 역자 김호동교수(서울대 동양사학과)의 자세한 역주와 체계적 해설이 있어서 ‘견문록’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커다란 도움을 주고 있다.
232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여행의 배경을 설명하는 ‘서편’과 각 여행지의 풍물과 사정을 기술하는 일곱 편으로 나눌 수 있다. 언급하는 지역은 ‘암흑의 나라’ 극지대부터 자바와 수마트라, 그리고 ‘황금의 나라’ 일본까지 포괄한다.
게다가 책에는 산을 움직인 독실한 구두쟁이의 기도나 전설적인 동방의 기독교 군주 ‘프레스터 요한’에 관한 기록들처럼, 현대인의 상식으로는 믿기 어려운 갖가지 경이로운 이야기가 가득 차 있다. 천국과 같은 정원과 아름다운 여인으로 젊은이들을 유인해 자신의 명령에 따라 목숨을 던지게 했다는 ‘산상의 노인’은 암살자(assassin)의 어원과 연관이 있기도 하다. 이토록 중요하며 흥미로운 고전의 온전한 번역이 드디어 출간된 것은 우리 모두의 기쁨이다. 김호동 옮김, 590쪽, 2만6000원.
이동철(용인대 교양과정부 교수 중국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