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시간으로부터의 해방'…'두뇌체조'의 재미 듬뿍

  • 입력 2000년 7월 7일 18시 51분


1997년, 독일 바이마르시는 ‘1999년 유럽의 문화수도’ 지정을 축하하기 위해 ‘국제 밀레니엄 에세이 콘테스트’를 개최했다. 독일 영어 프랑스 스페인 러시아 중국 아랍어 등 7개 언어를 대상으로 실시한 대규모의 국제공모였다.

주어진 주제는 ‘미래로부터 과거의 해방, 과거로부터 미래의 해방’. 시간에 대한 철학적 고찰과 역사에 대한 심오한 인식을 함께 요구하는 중후한 테마였다. 마감 결과 123개국에서 2480명이 응모했고 이름을 대면 알만한 내로라하는 학자 교수 작가들이 수두룩했다. 과연 누구에게 1등의 영예가 돌아갈까.

놀랍게도 최우수상의 주인공은 약관 20세의 러시아 여대생이었다. 미국 워싱턴대 법학교수, 유고슬라비아의 저널리스트, 프랑스 출신의 미국 시인 겸 학자 등이 뒤를 이었다. 이 전무후무한 컨테스트의 수상작 10편을 모은 에세이집 ‘시간으로부터의 해방’(자인)이 번역 출간됐다.

1등상 수상자인 이베타 게라심추쿠는 ‘바람의 사전’이라는 제목에 맞춰 ‘사전(辭典)형식’이라는 형태로 독특한 시간관을 풀어나간다. 역사적 사실과 가공의 사건이 교묘하게 뒤섞인 그의 ‘사전’을 읽다 보면 시간에 대해 대립적 입장을 가진 두 가지 인간집단을 만나게 된다. 아네모필, 곧 ‘바람의 신봉자’ 와 흐로니스트, 즉 크로노스(Chronos)의 추종자가 그들.

아네모필이 변화를 사랑하

고 삶을 바꾸려하는 열망에 휩싸여 있는 반면, 흐로니스트는 모든 변화에 적대적이며 과거에 집착한다. 역사를 기록한 사람들은 흐로니스트이므로 그들의 승리는 더 잘 기억되지만, 미래는 아네모필에 의해 준비된다는 것.

시간 자체보다 시간의 이미지와 싸우는 인간 딜레마를 논한 2등상 수상작,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와해를 ‘집’의 붕괴에 비유한 3등상 수상작…. 열 개의 에세이가 각각 나름대로의 정연한 논리 구성과 해박한 지식 나열로 ‘두뇌 체조의 재미’를 한껏 느끼게 한다. 신변잡기 수필 ‘미셀러니’ 가 아닌 진짜 에세이(隨想)의 매력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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