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은 백제 고도 부여가 몸살을 앓고 있지만 아직은 회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전 공주 논산쪽에서 부여로 들어가는 길목인 쌍북리 금성산 자락. 백제의 흔적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곳. 그러나 좌우로 5층짜리 아파트가 즐비하다. “고층이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군”하고 자위하는 순간….
▽부여에도 끝내 고층아파트가〓지금 쌍북리엔 고층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10층짜리 8개동. 고층아파트는 3∼5층 건물과 달리 5m 이상 기초공사를 해야 한다. 이 정도로 땅을 파내려가면 유적은 완전 파괴된다. 그러나 고층아파트 건설을 막을 제도적 장치가 전혀 없는 게 지금의 현실.
▽고도에 어울리지 않는 경관〓부여군은 백마강변의 부산(浮山) 암벽에 세종대왕 이순신 등 역사인물 5인의 얼굴상 제작을 추진한 적이 있다. 사적지 경관 훼손이라는 비판으로 일단 좌절됐지만 부여군은 다른 곳에 이를 제작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동남리 궁남지 앞 야산 3000여평을 깎고 백제 5000결대사 충혼탑을 세우기 위해 발굴 중이다. 이 역시 고도 훼손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부여 시외버스터미널 옆 로터리의 철제 조형물과 국립부여박물관 앞 원형 조형물 역시 고도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신광섭 국립중앙박물관 유물부장은 “백제금동대향로 모형을 세우는 것이 백제 분위기에 훨씬 잘 어울릴 것”이라고 조언한다.
▽아직 희망은 있다〓부여를 살리기 위해선 외곽에 신도시를 만들고 도심엔 백제의 모습을 되살려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서오선 국립부여박물관장은 “그것이 10년이 걸려도 좋고 50년이 걸려도 좋다.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고도 부여는 영영 사라진다”고 말한다.
현재 부여의 유적지는 하나하나가 고립되어 있다. 도시 전체로 보면 고도의 분위기가 없다. 따라서 우선 권역별로 나누어 주변을 보존해나가야 한다. 부소산성권, 정림사지권, 궁남지권, 능산리고분권, 백마강권 등으로 나누어 인접 지역의 개발을 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부터라도 국가가 주변 땅을 조금씩 사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머지않아 서울 풍납토성처럼 돼버릴 것이다.
▽국가가 나서야 한다〓대부분의 주민들은 “문화재가 언제 밥먹여 줬느냐”고 반문한다. 군 관계자도 “지방자치단체로선 주민 피해 보상과 문화재 보존을 위한 재정 마련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고충을 토로한다.
따라서 국가가 나서는 길 밖에 없다. 서관장은 “인간문화재에 지원금을 주듯, 고도를 지켜야 하는 주민에게도 보상을 해야 한다. 그래야 주민의 자긍심이 생기고 고도 보존도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지방자치단체에만 떠넘길 것이 아니라 ‘고도 보존을 위한 특별법’ 같은 국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고도 부여’는 ‘신도시 부여’되고 말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부여〓이광표기자>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