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강의한 것을 하나하나 내는 겁니다. 본래 책으로 낼 뜻은 없었지만 제자들이 강의를 정리해 가지고 와서 널리 배울 수 있도록 하자고 청하는 바람에 승낙하고 말았습니다. ‘중용강의’도 곧 나올 겁니다.”
김옹이 계승한 스승 야산의 대학설(大學說)은 전통적인 주희(朱熹)의 방식과 다르다. 야산은 ‘주역’의 체계에 따라 ‘대학’의 경문(經文)을 태극(太極)으로 보고 전문(傳文) 10장을 주역의 64괘에 따라 64절로 나눴다.
“야산선생께서는 ‘주역’의 이치를 깊이 이해한 바탕 위에서 ‘대학’을 비롯한 경전들을 정리하셨습니다.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문제가 없을 겁니다.”
김옹에 따르면 옛날에도 일반적으로 유교의 기본 경전을 공부하고 나면 가정을 꾸리고 과거시험을 준비하느라 본격적으로 ‘주역’을 공부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이에 반해 야산은 ‘주역’에 몰두해 우주의 이치와 미래에 대한 예측을 담은 ‘주역’을 깊이 이해하고 ‘주역’의 체계에 따라 ‘대학’을 비롯한 유교경전의 본뜻을 파악했다는 것이다.
그런 탓에 야산의 ‘대학착간고정’의 서문에는 자신감이 가득하다.
“‘대학’의 순서가 뒤바뀌었다는 말이 있기에 생각해 보고 깨우친 바가 있어 바로잡게 됐다. 도통(道統)의 전수에 대해 감히 망령되이 논할 수는 없지만 공자의 문하에서 전수된 법도와 후인을 기다린다고 했던 주자(朱子)의 뜻을 생각한다면 침묵할 수만은 없었다.”
야산은 ‘예기(禮記)’의 한 편이었던 ‘대학(大學)’을 보완해 독립된 책으로 묶어 내며 “훗날의 군자를 기다린다”고 했던 주희의 뜻을 계승한다고 자신했다.
야산은 역사학자로 활발한 학문적 사회적 활동을 하고 있는 이이화씨의 선친이기도 하다. 그래서 야산의 역학을 계승한 김옹은 민중적 역사관을 가진 이이화씨와 매우 대조적인 모습으로 세상에 비치기도 한다.
“야산선생께서는 가족도 아들도 모르고 공부만 하신 가난한 선비였지요. 이이화씨는 한문을 좀 읽다가 독학으로 성공한 사람입니다. 저는 조부 밑에서 한학을 공부하다가 주역을 배우러 열아홉살에 야산선생 문하로 들어가 13년간 공부를 했어요. 제가 아는 것은 주역밖에 없으니 주역을 공부하는 것이지요.”
김옹의 겸사에도 불구하고 그의 강의를 거쳐간 수천명의 수강생은 물질문명에 찌든 사회에 대한 김옹의 희망이다. 김옹은 요즘 사람들이 물질문명과 시대조류만 따르느라 정신이 없는 것 같다며 “새로운 문화의 수용도 우리 고유문화의 바탕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김형찬기자·철학박사>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