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말하기 쉬워서 그렇지, 위의 명언을 남길만한 노병(老兵)이 어디 그리 흔할까?
설암(雪巖) 최갑석장군. 그가 36년간의 군생활을 마치고 육군소장으로 퇴역한 후 17년간의 사회생활에서 얻은 인생역정을 시·문집으로 펴냈다. 기록문학집 '철모를 벗고 사는 세상'.
요즘 젊은 친구들에겐 따분한 잔소리처럼 느껴질 것이고 구태의연하다고 핀잔듣기 일쑤일테지만, 나이 지긋한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저자가 읊어대는 우국충정, 몸으로 때운 현대사의 아픔에 수긍하는 바 클 것이다.
참군인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 사람은 많다. 그들은 어떤 명예나 부귀영화를 꿈꾼게 아니었다. 여기 최장군의 시문을 보면 조국사랑의 일편단심으로 엿볼 수 있다. 한때 '군홧발 정치'라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시절이 있었다. 그런 한켠엔 왜곡된 군인상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소신껏 맡겨진 복무에 열성인 군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가 있지 않았을까.
한편으로 고희를 넘은 老境에 부모님을 그리는 최장군의 정이 사뭇 애닮아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흔히 일본인들의 장점으로 '기록을 남긴다'는 것을 꼽는다. 우리는 자기 삶이든, 사회적 사건이든, 무엇하나 기록을 남기는 데 너무 소홀하다. 여기 백전노장의 기록문학을 읽다보면, 우리 기성세대가 험란한 세상을 헤쳐오면서도 위국헌신과 재가(齋家)의 명예를 뚜렷하게 생활철학으로 삼아왔는지를 알 수 있어, 새삼 옷깃을 여미는 숙연함에 사로잡힌다.
저자는 1929년 충남 부여에서 출생, 광복과 함께 국군의 전신인 조선국방경비대에 이등병으로 입대, 67년 보병5사단 포병사령관 78년 보병 8사단장 81년 육본감찰감 87년 평통자문위원 97년 한국전쟁문학회장을 역임했다.
최영록<동아닷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