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깊이듣기]오케스트라의 악기

  • 입력 2000년 7월 12일 18시 33분


고금의 대작곡가들이 ‘가장 완벽한 악기’로 불렀던 ‘악기’가 있다. 달콤한 미풍에서 성난 폭풍까지 지상의 사물과 인간의 희노애락을 모두 표현할 수 있다고 여겨진 그것은 사실 악기가 아니었다. 연주 때마다 수십명의 사람들이 힘을 보태는 ‘오케스트라’ 가 그것이었다.

어쩌다 한데 모이게 됐지만 오케스트라의 악기들은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트럼펫은 군대에서 주로 사용하던 악기였다. 호른은 이름(Horn)에서 보듯 원래는 짐승의 뿔로 만든 뿔나팔이었다. 유럽에서는 사냥꾼들이 신호를 보내는데 뿔나팔을 썼다. 베버의 ‘마탄의 사수’ 서곡에서 울려나오는 호른 소리는 사냥에 대한 유럽인들의 심리적 원형질을 자극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두 악기는 조상격 악기의 이미지를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는 예다. 그러나 다른 예도 있다. 고대의 목동들은 그림속에서 흔히 하프를 타며 노래를 부르지만 오늘날 하프소리에서 목동을 연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물’을 표현할 때 하프가 즐겨 쓰인다. 생상스의 ‘백조’ 반주음형처럼.

어떤 악기는 음색의 개성 때문에 특별한 연상작용에 이용된다. 플루트는 새소리와 닮은 음색 때문에 새를 묘사하는데 적격이다. 아예 특정한 소리를 모방하기 위해 생겨난 악기도 있다. 오케스트라에 사용되는 ‘벨’은 종(鐘)과는 닮지도 않았고 쇠파이프를 걸어놓은 것 같이 생겼지만 종소리를 똑같이 재현하는 악기다.

왜 이런 얘기를 쓰게 된 걸까? 관현악곡을 듣다 트럼펫 소리가 나면 ‘아 이건 전쟁 장면이구나’하고 알아채라고? 아니다.

오케스트라가 가진 묘미 중 하나는 악기마다 원래 가졌던 성격 또는 상징성을 떠나 작곡가가 의도하는 빠르기, 화음, 음색조합에 따라 천차만별의 새로운 개성을 부여받은 데 있다. 드뷔시가 호른을 쓰면 남프랑스 어딘가 무심히 떠있는 흰 구름 같고, 베토벤이 호른을 쓰면 (항상은 아니지만) 도시 한가운데서 기쁜 소식을 알리는 전령나팔 같다.

현악기군의 시원한 합주도 플루트 한두 대가 양념처럼 끼어들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색깔이 전혀 다르다. 악기음과 정서의 관계는 ‘기호와 상징물’라는 일대일 관계를 떠나, 전후 계열과 관계에 따라 전혀 새로운 의미를 빚어내는 관계로 발전돼갔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기음으로 구체적 사물을 묘사하려는 시도는 어느 시대에나 있다. 20세기 작곡가인 거슈윈이 ‘파리의 아메리카인’에서 쓴 호른은 무엇을 나타낼까. 독자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클랙슨 소리’였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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