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식의 환란일기’를 읽어보면 한국경제가 한발자국씩 수렁 속으로 빠져 들어갔던 과정을 생생하게 알 수 있다. 환란일기는 강경식(姜慶植)전 부총리 겸 재경원장관이 일기체로 쓴 환란보고서다. 환란 주범으로 석달 동안 감옥에 들어갔다 나온 후 쓴 것이다. 회고와 반성과 해명이 같이 들어 있다.
강경식씨는 평소 개인 PC에 공사간의 일들을 메모식으로 기록해 둔다 하는데 그 기록을 바탕으로 재정리하여 책으로 묶은 것이다. 그래서 사건 경과나 관계자들간의 대화 내용 등이 매우 상세하다.
‘강부총리’의 입장에서 쓴 환란보고서이기 때문에 사건 전모를 종합적, 객관적으로 그렸느냐엔 이의를 달 수 있겠지만 핵심 당사자가 기록을 토대로 직접 썼다는 점에선 귀중한 자료다.
강경식씨는 한보 부도가 터져 세상이 어수선했던 97년 3월 부총리 겸 재경원장관으로 입각하여 한국이 IMF 체제로 들어가기 직전인 11월 퇴진하기까지 8개월 동안 경제팀장으로 경제 소용돌이의 핵심에 있었다.
그때 유달리 사건들이 많았다. 연초에 터진 한보 사건을 비롯하여 대농, 해태 부도, 곧 뒤이은 기아사태와 금융개혁 파동, 그리고 마지막으로 덮친 동남아 통화위기 등 숨가쁜 국면들의 연속이었다.
96년 하반기부터 경기도 기우는데 성급한 국제화가 추진되고 그것이 낡은 경제사회 시스템과 부딪혀 파열음을 냈다. 공교롭게도 97년 말 대선을 앞두고 권력누수와 정치적 소용돌이가 같이 찾아온다. 모두들 사태를 우려하여 뭔가 획기적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고 느끼면서도 오랜 타성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결국 IMF 사태를 맞고 만다.
몰라서가 아니라 리더십과 결단력, 또 실천이 없었던 것이다. 가야할 길을 뻔히 알면서도 무엇에 홀린 듯 자꾸 엉뚱하게 가 버린 안타까운 과정들이 상세히 나온다. 위기란 처음엔 심각하지 않아도 그것이 자꾸 쌓이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치닫는다는 것을 알려준다.
8개월 동안 여러 일들에 얽힌 당사자들이 실명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입장이 곤란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엔 개인회고록 같은 것을 잘 안 내고 내더라도 모나게 안 쓴다. 강경식씨는 머리말에서 다소간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공인은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 환란보고서를 내는 것이라고 적고 있다.
IMF 사태라는 미증유의 국난을 겪었지만 그에 대한 객관적 기록이 드물다. 아직 제대로 된 공식 보고서도 없다. 97년에 일어났던 그 엄청난 사건이 왜,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앞으로 두 번 다시 안 일어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환란일기는 IMF 사태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단서들을 제공하고 있다. 다른 분들도 이런 기록들을 많이 내놓아야 전체상이 잡힐 수 있을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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