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부제는 ‘세계의 철학우화’. 각지에서 회자되는 지혜로운 이야기를 모았다. 동양학 전문가가 2천권이 넘는 동 서양 책 가운데 가려 뽑은 것이라 한다. 요정이나 귀신이 등장하는 신비적인 이야기나 억지로 교훈을 주입하는 이야기는 없다.
어딜 펼쳐놓고 봐도 좋은 토막글이라 휴가철 게으른 폼으로 읽는데 맞춤이다. 중간중간 썰렁한 대목도 없지는 않치만 눈에 익은 ‘코믹 우화’도 많다. 하지만 허리를 곧추 세우고 읽을만한 대목도 적지 않다. 특히 종교와 전통이 제각각인 민족들의 사고 편차를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중 하나가 ‘삶의 시작’. 세 사람이 삶이 시작되는 정확한 순간이 대하여 논쟁을 벌인다. 가톨릭 신자는 정자와 난자가 수정될 때라고 한다. 개신교도는 탄생 순간부터라고 맞받는다. 유대인은 이렇게 말한다. ‘아이들이 떠나가고 개가 죽었을 때부터’라고.
이런 행간 읽기를 원한다면 먼저 책 말미에 붙어있는 장문의 작가 후기를 보길 권한다. 특히 ‘이야기’의 탄생과 구비가 갖는 의미에 대한 지적이 곱씹을 만하다. 특히 이런 대목.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기억을 간직하지 못한 민족은 홀로 단절되어 사라질 것이다”.
▼'현자들의 거짓말' / 장 클로드 카리에르 지음/ 영림카디널/ 336쪽 8000원▼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