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루브르 계단에서 관음, 미소짓다'

  • 입력 2000년 7월 21일 19시 07분


서양 미술과 한국 미술을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작업이다. 미술의 배경이 되는 역사와 문화가 다르지만 그림 속을 거닐다보면 어떤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그 무엇, 그걸 찾는 즐거움.

주제 소재별로 나누어 서양 미술과 한국 미술을 비교한 이 책은 읽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여기 소개된 서양 미술품은 루브르박물관 등 유럽의 유명 박물관 미술관에 소장 전시 중인 것들. 유럽여행을 떠나기 전에 한 번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조선 후기 ‘미인도’와 밀로의 ‘비너스’.

놀랍게도 저자는 두 작품에서 유사한 특징을 많이 발견한다. 똑바르고 높은 코, 작고 윤곽이 뚜렷한 입술, 미소짓는 두 눈과 좁은 이마, 둥근 얼굴, 목덜미를 덮고 있는 잔머리카락. 둥근 눈썹이 확연히 차이가 나긴 하지만 비너스와 조선 미인의 얼굴이 균형 비례에서 적잖이 닮아 있다. 두 여인의 아름다움이 ‘숨막힐 정도’라는 사실도 물론 빼놓을 수 없다.

차이도 있다. 비너스가 알몸을 드러내 몸매를 자랑하지만 미인도는 옷의 선을 통해 몸매를 과장하고 있다. 비너스의 올린 머리는 성숙한 여인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지만 미인도의 검고 치렁치렁한 머리는 왠지 농염해 보인다. 그러나 미인도의 올린 머리는 그림에 강한 힘을 주는 매력이 있다. 이것은 비너스에 결핍된 여성적 매력이다. 그 때문에 미인도의 여인은 더 여인답고 성숙해 보인다.

왜 이런 차이가 났을까. 사랑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됐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리스의 사랑은 플라톤식 용어를 빌리자면 이데아, 즉 완벽한 아름다움과 초월적 미에 대한 것이었다. 인간적인 면모가 개입될 수 없었고 그것이 밀로의 비너스에 나타났다. 그래서 인간이 접근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미인도엔 조선 풍류의 미감이 있다. 풍류는 탐하는 것이고 감각적이다. 미인도에 인간미가 묻어나는 이런 까닭에서다.

이상주의에 치중한 비너스가 차가운 돌의 미인이라면 미인도는 인간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살아 있는 육(肉)의 미인이라고 한다.

이런 비교는 시종 흥미롭다. 김홍도의 ‘씨름’과 제리코의 ‘메두즈의 뗏목’(19세기)에서는 한 시대의 민중의 힘을 찾아낸다. 그러나 제리코의 그림에 오만한 엘리트의식이 배어 있다면 김홍도의 그림엔 긍정과 낙관, 해학과 여유가 숨쉬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러나 비교에만 치중하다보면 개별 작품에 각각에 대한 깊이 있는 감상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비교라는 신선한 매력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도 그러한 아쉬움이 남는다. 시대가 다른 조각과 그림을 비교한다거나 저자의 체험이 논리적인 분석보다 앞서나갔다는 점 등등.

▼루브르 계단에서 관음, 미소 짓다/ 박정욱 지음/서해문집 256쪽, 1만2000원▼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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