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잉카인들이라서 그런가. 안데스의 준령 사이에 콘도르의 모습을 한 도시를 건설했다. 쿠스코에서 열차로 4시간쯤 걸리는 마추피추(Machu Pichu)가 그곳인데, 해발 2400m 정도라 쿠스코에 비해 1400m 쯤 낮았기에 ‘코카차’의 신세를 지지 않아도 될 만큼 숨쉬기는 수월했으나 산세가 험하기는 쿠스코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마추피추는 1911년 미국의 하이람 빙검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하늘에서 내려다 보아야만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하여 ‘공중도시’라고도 불리는 마추피추는 하늘에서 보면 콘도르가 큰 날개를 활짝 펼친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적 입구의 오두막 전망대에서 전경을 바라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한가운데로 길게 뻗은 광장거리는 콘도르의 등줄기 같았고, 좌우로 펼쳐진 시가지는 커다란 날개로 보였으며, 제일 높은 곳에 돌을 다듬어 기둥처럼 세워놓은 해시계 ‘인티우와타나’는 그 반짝거리는 눈이었다. 높은 곳에 대한 동경이 없었더라면 과연 이런 도시가 태어날 수 있었겠는가. 잉카인들은 한마디로 높은 곳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쿠스코, 마추피추 그리고 안데스가 있는 남미의 페루에는 아직도 누가, 무슨 이유로, 어떻게 그렸는지가 밝혀지지 않은 거대한 지상그림(地上繪畵)이 있다.
남태평양을 끼고 있는 해안에서 그리 멀지 않은 평탄한 반(半) 사막의 나스카 평원이 그 현장. 길이가 150m나 되는 콘도르, 긴 꼬리를 돌돌 말고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 꼭 장난꾸러기를 방불케 하는 원숭이, 날개를 활짝 펴고는 어딘가를 향해 힘차게 날아가고 있는 긴 부리의 벌새, 좌우 대칭의 완벽한 구도를 가진 거미, 껑충껑충 뛸 자세인 캥거루 등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렇다고 20km가 넘는 거대한 지상캔버스가 온통 동물그림만으로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니다.
긴 평행선과 삼각형, 소용돌이 등 기하학적 도형도 무수하다.
어떤 통일된 구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질서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다. 다양한 그림들이 한곳으로 몰려 있지 않고 골고루 흩어져 있는 것이다.
이 지상그림이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은 항공시대가 열린 1939년.
그 후로 많은 사람이 누가, 왜, 어떻게란 문제에 도전한 결과 여러 학설이 제기되었다.
대표적인 이로는 스위스의 에리히 폰 데니켄과 나스카의 지상그림을 보호하고 해독하는데 평생을 바친 독일 출신의 수학자 마리아 라이헤 여사가 있다.
데니켄은 간단하게 외계인의 활주로였을 것이라 했고, 라이헤는 사막에 그어진 수많은 선들은 해가 뜨고 지는 위치와 달의 주기, 또는 별자리를 가리킬 것이라는 소위 ‘천문캘린더설’을 주장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여전히 ‘설’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
외계인 활주로 설과 천문캘린더 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다름 아닌 하늘이다.
외계인은 하늘을 통해 지구로 왔을 것이고 천문 캘린더는 말 그대로 우주와 하늘의 질서를 알려는 노력이기 때문에.
이 광대한 지상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그림을 작은 오차도 없이 그린 사실로 미루어 나스카인들에게 하늘은 신의 공간이 아니라 인간의 공간, 그것도 인간이 비상(飛翔)할 수 있는 운동공간쯤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하늘에서 내려다보아야만 그릴 수 있는 거대한 지상그림을 그릴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야말로 종교의 공간이 아니라 놀이의 공간으로서의 하늘을 발견한 최초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나스카 지상그림의 경계를 이루는 언덕의 경사면으로 세스나기가 접근하자 나의 생각을 뒷받침하듯 “저건 외계인이야”라고 외칠만한 인간의 모습이 나타났다. 부드러운 모래 위에 단순한 형태로 그려진 것이었는데, 머리가 큰 데다 올빼미의 눈을 하고 발에는 커다란 신발을 신고 있어 영락없는 외계인이었던 것이다. 나스카인들이라면 적어도 2000년 전의 인간들인데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모습과 똑같은 외계인의 모습을 그렸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하지 않는가. 그들은 그렇게 하늘을 날고 싶어했던 것이다.
권삼윤 (문명비평가)tumi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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