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토가 초토화하고 수백만이 죽어간 참혹한 한국전쟁이 끝난지 4년째 되던 1957년, 겨레의 몸만 아니라 마음까지 무너진 그 지성의 공백기에 ‘기독교 사상’은 태어났다.
김상근 발행인은 500호 기념호 권두언을 통해 “지금 예순을 전후한 지성적 기독교인의 젊은 시절 서가에는 ‘기독교 사상’과 ‘사상계’가 나란히 꽂혀 있었다”고 회고했다.
‘기독교 사상’은 신학사상의 안테나였다. 여성신학 정치신학 아시아신학 남미해방신학 흑인해방신학 등이 이 잡지를 통해 국내에 소개됐고 기독교의 비종교화, 세속화, 신(神) 죽음의 신학도 여기서 진지하게 다뤘다. 성서신학의 새로운 방법론도 한 부분을 차지했다.
‘기독교 사상’은 또 공의를 외치는 시대의 예언자였다. 군사정권시절 정권과 교계에서 동시에 금기시했던 민중신학의 첫 글이 ‘기독교 사상’에 실렸고 교단 차원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던 토착화신학 역시 이 잡지에서 제소리를 낼 수 있었다. 유신체제에서 비상계엄이 아닐 때에도 문공부의 사전 검열을 받은 잡지는 ‘기독교 사상’과 함석헌 선생이 내던 ‘씨알의 소리’뿐이었다. 5공시절인 85년 11월∼86년 4월에는 자진 휴간의 형식으로 정간을 당하기도 했다.
‘기독교 사상’은 그러나 보수적인 교단으로부터는 기독교의 정체성을 쉽게 저버리는 경향이 있으며 사회문제에 너무 치중해 목회현장으로부터 유리돼 있다는 등의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송평인기자>pisong@donga.com